들리는 걸 어떡해.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욕은 나쁜 것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반대로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욕설에 노출되어 오고, 다양한 매체로부터 욕설들을 다양한 감정 표현의 도구로서 학습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욕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욕설'로 대표되는 '존*', 그리고 '씨*' 과 같은 '욕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당연히 남에게 드는 '욕'은 불편하지만, '욕 단어'가 들리는 상황은 저만 불편한 것 같기도 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우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카페에 있다보면,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다보면 대화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게 될 때가 많습니다. 사실 내가 들으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근데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사실 재밌는 이야기나 뭔가 흥미있는 '썰' 같은 걸 풀면 은근슬쩍 이어폰의 음량을 낮추기도 해요. 그리고 조용조용 나도 모르게 머리를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그런 '썰'을 다른 누구에게 전달하는 못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옆자리 않은 커플의 대화,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의 대화, 그리고 저 뒤에 킥킥거리는 남자 고등학생들의 대화까지 사실 재밌는 대화도 많은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다양한 공공장소에서 들리는 대화소리가 제 집중이나 제 삶의 활기를 더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양한 사람과 간접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하고, 그런 순간들이 극I 성향인 제게는 부담없이, 사람을 만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끔 들려오는 '그' 단어들이 제 기분을 팍 상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피해를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런 감정들이 몰려오는 때가 있습니다. 대화 중에 은연히 등장하는 추임새격의 '씨*', '존*' 등등 그런 류의 '욕 단어'들이 제 하루를 살짝 피해주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우리는 짬뽕 같은 빨간 음식,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 같은 그런 음식을 먹다보면 옷에 튀길 걱정을 많이 합니다. 먹을 때는 기분이 좋고 그렇지만 옷에 팍 튀기는 순간 맛은 한 순간에 잊어버리고, 빨리 물티슈를 찾아 짜증나는 빨간 국물을 옷에서 빡빡 닦아 지워내려고 합니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기분 좋게 들리던 대화나 생활의 소음들 사이에 갑자기 '씨*', '존*' 이런 단어들이 들리면 저는 왠지 모르게 혼자 불편해집니다.
절대 뭐라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유튜브를 켜서, 아무 쇼츠나 봐도, 아무 영화의 클립이나 드라마 클립을 봐도 욕설이 들리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졌어요. 그런데 옆에서 누가 전화하면서, 아니면 얘기하면서 '씨*' 한 마디 했다고 뭐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편하긴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불편한 것도 이유가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욕은 나쁜 거라고 배운 저의 교육 탓일까요. 사실 제게 한 것도 아니고, 제가 들으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도 주변 사람이 들릴 것 같다면 조금은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말은 단 둘이 있을 때, 또는 혼자 통화할 때 친구와 실컷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옆에 사람이 들릴 수도 있다면 조금은 한 번 참고, '욕 단어'만 쏙 빼서 얘기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사실 그런 욕이 들리는 대화는 대부분 기분 나쁘거나 다투는 대화인 경우는 제 경험상 없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 추임새 정도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존*' 쎄다던가, '씨* 개 빡-치는 경우' 라던가 하면서 공감을 형성하는 좋은 대화를 하고 계신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의 귀에는 대화가 다 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된소리와 울림소리 따위의 조합이 있는 욕설들은 귀에 팍 박히니까요.
저만 불편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만 그냥 그러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그런 아주 얕은 윤리적인 선에서 논의가 될랑 말랑한 상황에 불편해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욕하는데, 나도 욕하는 영상 보면서 너무 '찰쳐서' 많이 웃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넘기는 제가 되고 싶기도 하고 참 복잡한 마음입니다.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연예인에게 오는 악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악플을 남이 던지는 쓰레기. 그 쓰레기를 구지 들지 않아도 된다. 받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욕이 들려도 제가 마음을 쓰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요. 저는 신경쓰지 말고 욕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안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예민한 저라도 사실 그 자리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고, 오히려 머리 속에 공회전만 많아집니다. 사실 그런 공회전을 해소하려고 이 따위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표현 하나도 신경써서 하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욕도 버릇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자칭 '프로 무단횡단러'입니다. 괜찮은 것 같고 차 없으면 솔직히 마구 건넙니다. 늦으면 마구 건넙니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고 아무리 건너고 싶어도, 옆에 학생이나 아이가 있으면 절대 건너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 될 지 생각해볼 때가 많거든요. 엄마도 아빠도, 학교에서도 빨간 불에는 건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지키던 아이가 저를 보고 무단횡단을 시작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그러다 언젠간 불의의 사고라도 나면, 하고 싶고요.
아이들에게는 나쁜 말 한마디 그저 하는 것이 큰 것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욕은 조금 줄이되 아이들 앞에서는 '에휴 씨* 왜 이렇게 다 힘드냐' 이런 말도 '에휴, 왜 이렇게 힘드냐 인생이'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실제로 앞으로 그럴 용기는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한 번 째려보고 말겠죠. 제 집중이 깨지더라고 그냥 사람과 사람은 영향을 미치며 사는 존재니까 하고 다시 제 일에 집중하려 할 것 같습니다.
예쁜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버릇을 들이다보니 그런 욕 하나도 예민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 것이겠지요. 길거리 걷다가 욕 한 마디 들렸다고 이렇게 길게 글을 적어대니까요. 우리가 욕을 가장 빠르게 모르는 사람에게 많이 할 때는 운전할 때인 것 같습니다. 놀란 마음이, 화로 이어지고, 그게 급박히 욕으로 인수분해 되어서 육두문자가 발사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오히려 참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버스기사님의 급 분노의 육두문자도 아이가 같이 타고 있다면 많이 불편하지만요. 가족이 탄 차에서 아빠가 화가 나서 옆 차 욕을 하면 엄마가 말리던 그런 영상을 많이 봤습니다.
놀란 마음이 욕 단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힘들다, 너무 재밌다, 너무 부럽다 등 강한 감정이 욕을 사용해서 표현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실 욕을 하고 싶은게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대신에 다양한 표현을 넣으면 말도 더 재밌어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