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 무너지고 깨어지기를 반복하는 정신병자의 삶은 실제로 느리게 흐른다. 하는 게 없으니까. 뭘 해보려고 해도 어떤 것에도 흥미가 없고 할 힘도 나지 않으니까. 가만히 누워서 사후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다. 스스로를 쓰레기같다고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삶 따위를 끝없이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바다에 와 있다. 나는 바닷속을 정처 없이 부유하는 해파리다. 해파리의 삶에는 목적이 없지만, 그것이 해파리의 삶이므로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면 흐른 눈물이 마치 너는 지금 태평양 한가운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렇게 하루를 망치고 저녁 밥상 앞에 앉아 반찬을 씹고 있을 때 기분은 바닥을 친다. 잘 모르지만 대충 사자보이즈라도 소환해서 나를 데려가줬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밥을 먹고 나면 우리집은 항상 루미큐브를 한다. 항상 하던 건 아니고, 내가 정신병자가 되고 나서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엄마가 고안해 낸 묘안이다. 숫자 몇 개를 놀려서 원하는 패 구성을 만들고 조커를 적절히 사용할 타이밍을 찾다 보면 30분이 뚝딱 가 있다. 고여서 썩은 내가 나는 하루에 잠깐 물이 흐르는 것 같다. 눈물 말고 맑은 물.
그런 것들이 있다. 살기 싫다고 우는 내게 동생이 내민 아이스크림, 거지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서 그랬다고 몇 자 끄적여보는 블로그, 누구나 사는 게 두렵지만 내보일 것 없는 내 인생도 빛날 수 있다는 노래 가사. 이들이 나를 가끔 삶에서 억지로라도 붙잡아주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습지만 그렇지 않으면 진작 수강신청하듯 클릭 한 번으로 인생에서 드랍하는 기계라도 만들었을 텐데. 우리 생각보다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은 단순하고 사소하다. 고여있는 내 하루에도 잠깐씩 물이 들어오는 그 느낌을 되새긴다.
아, 그래서 정신과 선생님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구나. 이제야 알겠네. 두드러기가 나서 정신과를 찾았을 때였다. 전공의는 약물 알러지를 의심하는 내게 물을 많이 마셔 몸 속 리튬 성분을 희석시켜야 몸이 낫는다고 했다. 그 말이 내 속에 있는 것들을 없앨 수는 없고, 다만 맑은 물로 씻어내려 옅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구나.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깨끗한 물을 끝도 없이 마시는 것. 수분이 꽉 들어찬 몸이 기분 좋게 부풀도록 내버려두는 것. 부풀어오른 어느 저녁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나마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