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서핑하기

by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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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형태와 양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 자살사고는 파도와 같다. 강력한 자살사고가 들이닥치면 머릿속엔 비상등이 켜진다. 몸의 온 감각이 자살, 품 속으로 날아드는 달콤한 죽음을 향해 뛴다.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면 그때부터는 못된 재해를 일으킬 계획과 그를 막기 위한 대비책이 동시에 작동한다. 마음 속에서 죽는다, 만다, 죽는다, 만다를 수없이 반복하는데 그래도 너울성 파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아니면 생명이 위험하니까.

나같은 경우엔 장소를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집에 누워있다면 화장실로, 오프라인 세상에 있다면 온라인으로. 오늘은 서울에 있다가 대구로 내려왔는데, 오는 길에 경보가 한 차례 발령됐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주치의 선생님이나 상담에서 배운 것들 실천하기도 귀찮고 살기 싫다. 오랫동안 품어온 미제 사건과도 같은 이 생각은 집채만한 파도를 일으켜 하마터면 나를 집어삼킬 뻔했다. 걱정할 일은 아니고, 그만큼 이번 파도가 강력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 지난한 시기가 지나간 평안한 저녁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더 이상 내 자살사고에 관여하지 않으신다. 자살사고를 아예 없앨 수는 없고, 그때그때 조절하는 거지만 정 불안하면 나를 보러 올 수 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오늘을 버틴 계기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결국 자살사고도 생각이다. 생각은 고작 내 몸에서 수 퍼센트밖에 차지하지 않는 뇌가 한다. 그 조그만 기관에 온 몸이 휘청일 필요도 가치도 없다. 그저 무시하거나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면 될 뿐.

그래서 나는 이제 파도 위에서 서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휘몰아치는 파도 위에서도 중심을 잡고 멋지게 서 있는 서퍼가 되면, 자살사고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제일 중요한 건 이 파도를 내가 싫어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나는 내심 파도가 나를 집어삼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파도가 치는 내 마을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쉽지 않겠지만, 낯익은 손님을 밀어내는 것부터가 시작이겠지. 그리고 서서히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다, 이 거친 파도 속에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 내일이 되면 나는 또 파도를 만나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거나, 어쩔 줄 모르고 파도가 내 마을을 휩쓸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사람, 인 것 같다. 사람을 궁금해하고 사람과 이어지려는 일. 주저하지 않고 균형 좀 잡게 나를 위해 손을 뻗어줄 수 있겠냐고 묻는 일. 초보 서퍼에게는 그 일만 제대로 해내도 그날의 임무를 다한 셈이다. 그렇게 유유히 서핑하는 멋진 서퍼가 되는 것이 오늘 세운 새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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