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데 질렸다. 네가 내린 결론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쳇바퀴처럼 펼쳐지고 너는 매일 머리를 쥐어뜯으며 깊은 우울 속으로 침잠한다. 네가 우울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어서 이겨내라고 말한다. 이겨내, 이겨내란 말이야. 링 위에 선 아슬아슬한 기분. 그 기분으로 일분 일초가 흐른다. 너에게는 하루 중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고, 너 스스로에게 더 바라는 점이 없다. 그저 죽음을 닮은 달콤한 잠만을 종일 원한다. 사는 것도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너는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 나는 사는 건 적성에 안 맞아, 되뇌인다.
너는 어쩌면 네가 당면한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그렇다면 그 어려운 문제 따위 포기해도 될 터였다. 그런데 그 관계가 내 전부라면. 포기할 수조차 없고 고민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문제 앞에 너는 버려져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알려주는 사람들은 없다. 아니, 있다. 그들이 답을 주기까지 기다려보지만, 결국 문제를 푸는 건 너 자신이라는 생각에 너는 다시 막막해진다. 망망대해 속을 아무런 지도나 나침반 없이 헤엄하는 기분이다. 평생. 이 항해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어린아이처럼 손놓고 기다릴 뿐이다.
작년 11월처럼, 너는 삶의 의미를 매일같이 구하지만 마침내 내린 결론은 '없다'. 무의미한 삶을 의미로 채색해보자는 상담사의 말을 생각하고, 그런데 이 무의미가 왜 이리도 허상같이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다가 급히 생각을 멈춘다. 의미 그놈의 의미. 가끔, 너는 남의 인생과 너의 인생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곤 한다. 어떤 인생은 의미가 있고, 어떤 인생은 의미가 없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후자에 해당되는데 내가 왜 살아야 하지. 후자의 삶도 가치롭다고 말하는 이들은 많지만 적어도 네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네게 결국 무의미는 언제나 무가치로 귀결된다.
너는 작년 가을 했던 결심을 기억한다. 내년 11월이 올해 11월보다 살기 힘들다면 나는 세상을 훌쩍 뜨겠노라고. 농담처럼 했던 그 다짐이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실제가 되었다. 거짓말같은 11월도 벌써 반절이나 지나고 연말을 앞두고 있다. 연말이 되면 또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휩싸이겠지, 죽고 싶어지겠지. 너같은 정신병자들은 감이 좋다. 너는 남은 11월을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포장할 수 있다면 남은 11월을 모조리 테이크아웃해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이니까. 너는 내일도 병원에 가고 상담을 받을 것이다. 상담실에서 휴지를 펑펑 뽑아쓰며, 생을 꾸리기가 힘들다고 엉엉 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