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꽤 괜찮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브런치 글쓸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실은 정서적 둔마가 무엇인지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매일 일어나는 일들에 둔해지는 느낌이다. 창밖에 은행나무가 예뻐도 그저 그렇고, 배달시키려는 치킨집이 문을 닫아도 뭐 아니면 그만이다. 좋게 말하면 담담함, 나쁘게 말하면 무감함. 감정이 메마르자 우울감도 착실히 커지고 있다. 삶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삭막한 삶이 싫어서, 가끔씩은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또 내가 살아온 나날들을 생각하면 남은 날들에 비해 택도 없이 적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버릇 때문이다.
죽고 싶은지 살고 싶은지 하나만 할 수는 없나. 나는 평생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아마 언제든 죽음을 인생이 안 풀릴 때 하나의 선택지로 끼고 살겠지. 상담을 꾸준히 받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나를 사랑한다거나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정한다거나 그런 류의 밝디밝은 것들을 목표한 적 없다. 그저 어제보다는 내일이 나았으면 좋겠고, 삶 쪽으로 몸을 더 기울일 만한 사건이 생기기를 바랄 뿐이다. 이 소박한 목표조차 아직 못 이루고 있는 입장에서 할 말이 없기야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이왕이면 삶을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
자살시도로 입원을 했을 때, 상담 수업을 통해 내가 우울증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지금의 상담사 선생님이라는 소중한 인연과 나를 연결시켜 주신 교수님께 메일을 쓴 적이 있다. 삶이 유난스럽지만 그래도 그 너머를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내용으로 별 기대 없이 보냈는데 장문의 답장이 왔다. "지금 당장은 삶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를 상상해볼 수 있음'이라는 학생의 문장이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 상상은 삶을 이어가는 힘이 되고, 결국엔 삶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자살사고가 극심한 오늘, 왜 이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삶을 상상할 용기마저 스러지고 있기 때문일까. 그럴수록 더욱 단단히 끈을 붙잡아야지. 내일은 재활센터에 가기로 되어 있고, 며칠 뒤엔 주치의 선생님을 뵙고 상담도 받아야 하고, 2월쯤엔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다. 벌써 표도 끊어두었다. 무감한 나날들 속에서 고정된 일정이 있을수록, 그런 것들로 내 삶을 채워넣을수록 삶을 향한 열정이 커졌던 것을 기억한다. 더는 반복되는 내일을 상상하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힘이자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