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떨어졌다. 작년 겨울부터 나는 틈틈이 쓴 글들을 여러 매체에 투고해 왔다. 일단 막 던져 놓으면 뭐든 하나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작게는 교내 뉴스레터부터, 교내 에세이 공모전, 전문 월간지, 일을 더 벌려서는 신춘문예 수필 부문과 언론사에까지 소중한 내 글들을 제출했고 내는 족족 퇴짜를 맞았다. 내 글이 그렇게 매력이 없나. 하기야 내가 보기에도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내 글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내 글에는 나를 닮아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구석이 있다. 우울하고 미숙한 글을 쓰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깊은 좌절이 따라온다.
어릴 때 내가 유일한 재능이라고 믿었던 것은 글쓰기였다.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며 내 인정 욕구를 채우곤 했었다. 그러나 질풍노도의 중학교 시절을 거치며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졌고, 마침내 나는 특기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진로 상담에서 나는 나름 진지하게 '선생님 저는 잘하는 게 없어서 고민이에요'라고 토로했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선 당황하신 듯 웃으시면서 '너는 공부를 잘하잖아'라고 대답하셨다. 그 문장은 고등학교 3년 간 내 정체성을 규정했다. 공부를 잘 못하는 나는 내가 아니였으니, 스스로를 학대해서라도 입시에서 성공해야 했다. 그렇다면 남들이 성공이라 평할 만한 입시 결과를 얻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이후가 문제다.
결국 내가 다시 천착한 것은 글쓰기였다. 다행히 대학 글쓰기에는 주술 관계를 명확히 하고 문단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둥의 기초적인 원칙만이 필요했다. 동기들로부터 잘 쓴다는 평을 얻고 나서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휴학을 하여 학술적인 글쓰기를 쉬고 있는 요즘에는 그 신념조차도 흔들린다. 그래서 다른 유형의 글쓰기인 에세이를 밀어붙여 봤지만, 전부 미채택이라는 결과가 돌아왔다. 어젯밤 마지막 남은 총알까지도 빗나갔음을 깨달았을 때 몰려왔던 회의감은 아마 내가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증거겠지. 생각보다 '쓰는 사람'이 내 정체성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어제는 열 번이 넘도록 떨어진 마음들을 헤아리며 잠이 들었다.
우스운 건, 다음 날 일어나서 나는 또 떨어진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는 거다. 쓰는 행위가 내 정체성과 결부된 이유는 어쩌면 씀으로써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남에게 드러내지도 않고 나조차도 몰랐던 감정들이 문자로 떠오르면, 그 조각들을 건져 다시 나라는 사람을 얼기설기 바느질할 수 있다. 내게는 사실 잘 쓰고 못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쓰는 것 그 자체가 나를 위하는 일인 셈이다. 그러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일지라도 계속 써보려고 한다. 당분간 떨어질 지 모르는 공모전 출품은 그만하고, 오로지 나 한 사람을 위한 탈락 없는 글쓰기를 해야겠다. 이미 떨어진 마음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새 마음 새 글으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