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주에 손목을 세 번 그었다. 그게, 나는 분명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번아웃 아닌 번아웃에는 차도가 없고 인생 뭐 될 대로 되라지, 보기 좋게 흉이 진 모양새가 지금의 내 마음이란 걸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자해를 하는 정확한 이유는 나만 알겠지만 나조차 모르므로 결과적으로 아무도 모른다. 바로 어제, 손목을 긋고 나서 피가 흐르자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그리고 매주 상담에서 선생님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이번 주는 하지 않기로 했는데 내가 또 어겼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월요일 상담에서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밖에는 없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선생님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으셨다. 단지 늘 하던 대로 내 팔소매를 걷어 붉은 흉터를 확인하셨다. 그리고 함께 내가 자해를 하는 원인을 찾아보자셨다. 선생님께서 짚으신 것은 역시나, 가족 관계였다. 나는 아침을 먹고 11시가 넘어갈 무렵, 거의 일정한 시간에 자해를 해왔다. 자해를 하기 전 있었던 이벤트는 가족끼리 모여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뿐이다. 선생님께서는 식사를 하며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냐고 물어보셨다. 답은 간단하고 일정했다. 아빠가 직장생활에서 있었던 부당하고 속이 상하는 사건을 이야기하면, 엄마가 다 듣고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는 식이었다. 내 지분은? 없다.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입에 밥을 쑤셔넣은 뒤 설거지 더미에 내 밥그릇을 올려놓는다.
이 식사 자리가, 선생님은 이상하게 들린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아빠의 평소 성격과 가정에서 아빠의 이미지, 내가 바라본 엄마와 아빠의 결혼 생활 등을 확인하셨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집은 말하자면 엄마가 갑, 아빠가 을이다. 이는 유년기 아빠가 우리 가족에게 보인 취약한 모습으로 인해, 또 자녀교육이나 금전 관리 등 필요에 의해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이 엄마에게 위임되며 형성된 구조다. 나에게는 당연한. 주변 친구들을 봐도 집에서 엄마의 권한이 우세한 경우가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선생님께서도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시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아빠가 본인이 취약했던 시절에 대한 사과 없이 모든 상황을 넘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종이컵이 등장했다. 술이 아빠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절, 어린 나는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렇지만 아빠는 술을 마시면 무섭게 돌변하는 반면 나는 또래보다 몸집도 작고 약한 어린아이였기에, 할 말이 있어도 꾹 삼켜야만 했다. 그때 못했던 말을 지금 종이컵에게 쏟아내 보았다. 내가 했던 말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방식은 가족에게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전이하는 것일 뿐, 아빠가 가진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과도한 음주로써 가족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자녀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술 대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더 보내는 것이 진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일 것이다.
술과 아빠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지금도, 직장에서 있었던 불상사를 가족이 들어주는 일은 아침 식사 자리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 순환을 끊기를 권유하셨다. 이를테면 부모님과 식사를 따로 하거나, 아빠에게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엄마랑 둘이 나누라고 단호하게 끊어내는 식으로. 선생님은 아무 에피소드도 축적되지 않은 아침부터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적어도 지금 우울하고 불안한 내 정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십수 년 간 군소리 없이 아침밥을 먹어온 나에겐 선생님 말씀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가볍게 아빠 힘든 이야기는 나중에 듣자고 얘기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담실에서는 적어도 그랬다.
상담실을 나서니까 점점 용기가 사라지고 걱정만 는다. 당장 손목 상처를 어떻게 가릴지부터가 문제인데다, 아빠 이야기를 미루면 아빠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나 싶고, 희대의 불효녀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요'를 되새긴다. 권유일 뿐 강요는 아니니까. 변화를 만들지 말지 정하는 것도 순전히 내 몫이다. 다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내가 자해를 하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다음 회기가 이 선생님과의 마지막인데, 이번 한 주만큼은 부디 약속을 지킨 내담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