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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의 삶 Nov 15. 2023

버러지 세상의 이치

'민박집 할머니 - 김문' 시를 읽고

민박집 할머니 - 김문


칠십 노파가 자식 쓰던 방에

가끔 민박을 치는데

귀가 어두워 큰 소리로 말을 해야

눈치 살펴가며 알아들으신다


초저녁 강둑에 나가 모깃불을 놓을

쇤 쑥대 한아름 베어서

풀밭에 툴툴 터시기에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버러지도 산 목숨잉께

살 놈은 살라고 그라요 하신다


천지의 버러지들이 그 말을 

넙죽 받아먹는데

나도 한 입 날름 받아먹고

찌르륵 찌르륵 울던 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삼각지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저 시를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곧 터질 듯 얕은 숨을 몰아내쉬던 감정이 올라오는 듯했다. 지하철에 올라 찍어두었던 사진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어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할머니의 따스함과 시골집의 정이 느껴지는 그런 시인줄 알았다. '버러지도 산 목숨잉께 살 놈은 살라고 그라요'라는 구절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천지의 버러지들이 그 말을 넙죽 받아먹는데.'라는 구절에서 이 세상의 모든 버러지들이 떠올랐다. 절대 죽지 않는 이 세상의 악이라고 생각했다. 넙죽 받아먹는다는 표현에서는 그들의 양심 없는 태도에 증오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다음 문장을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나도 한 입 날름 받아먹고 찌르륵 찌르륵 울던 밤이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악한 그들과 내가 다른 게 무엇인가 생각했다. 나는 '나는 달라. 나는 착한 사람이야'라며 세상에 살아 숨 쉬는 크고 작은 문제와 어둠을 회피해 왔다. 시의 구절 하나하나는 날카롭게 내 마음에 박혔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위선이 나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살든 죽든 그저 풀밭에 툴툴, 흩뿌려진 것도 인생이라고 꾸역꾸역 살아내는 내 자신에 대한 연민도 느껴졌다. 지금 내가 사회의 아무런 쓸모가 되지 못하고 붕 떠있다는 생각에 더 와닿았다. 나에 대한 생각을 마치니 나를 둘러싼 세상이 떠올랐다. 할머니 손에서 툴툴 털리는 먼지 한 톨만 한 버러지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서로를 미워하고 경쟁하고 뜯어먹고 또 어떻게든 살고 싶어 '버러지도 살아야지'라는 말을 주워 먹는다. 한 차례 큰 재앙이 세상을 휩쓸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지겨워한다. 그리고 나도 살기 위해 그 말을 받아먹고 사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멀리서보면 그냥 다 버러지 같은 작디 작은 존재인데, 우리는 버둥거리며 너무 치열하게 살아간다. 찌르륵 찌르륵 울던 슬픈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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