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궤도이탈 Mar 06. 2022

15. 작아지는 인간 (3)

  “어쩌면 좋을까요?”

  그녀가 말했다.

  “우선은 가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가정?”

  그녀가 후배 쪽으로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이 세계가 문학이라는 가정요.”

  그녀와 남편은 잠시 말이 없었다.

  “너도 그 의사랑 똑같이 말하네.”

  남편이 말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 세계가 문학이라고 가정하면 선배에게 닥친 일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고, 그럼 어떤 해결책이 떠오를지도 모르죠.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후배가 말했고 잠시 후 덧붙였다. “그리고 이제 와서 현실을 말하기에는 좀 늦은 거 같은데요?”

  그녀는 후배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니 반박은커녕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 어느 순간 현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세계 속에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맑은 날씨였는데 터널을 통과하니 비가 퍼붓는 풍경을 맞이한 것처럼.

  “형수님은 그 소설의 주인공이 왜 벌레로 변했다고 생각하세요?”

  후배가 말했다. 그녀는 소설을 떠올렸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벌레로 변한 남자. 그는 왜 벌레로 변했을까? 그전까지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남자가 왜 갑자기 벌레로 변한 것일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가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녀가 그다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그런 설정을 했을까요?”

  그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를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요?”

  질문이 계속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 남자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 그게 무얼까?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독서를 즐겨하지도 않고 글을 써본 적도 없으니까요. 다만 그 소설을 읽고 제가 받았던 느낌을 떠올려보면, 그냥 안타깝고 불쌍했어요. 그 남자는 자기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헌신했는데 벌레로 변하니까 점점 소외되죠. 그러다 죽게 되죠.” 그녀는 자신이 하는 말 속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엔 그의 가족이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떠올려보니 마냥 비난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자기 아들이, 오빠가 벌레로 변했는데 예전처럼 그를 대할 수가 있을까. 지금 제 앞에 저만한 바퀴벌레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걸 도저히 다른 누구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불쌍하고…… 복잡한 마음이에요.”

  “어쩌면 형수님이 말씀하신 게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바일지도 모르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어떤 소설이든 무엇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후배가 말했고 시선을 남편 쪽으로 옮겼다. “그럼 이걸 선배의 상황에 적용시켜 볼까요. 만약 이 세계가 문학이라면 이걸 쓰는 작가가 있겠죠. 그는 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요?”

  그녀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 세계를 쓰고 있는 작가에 대해. 그녀는 얼마 전 백화점을 홀린 듯 맴돌며 했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때 소설을 읽고 생각에 잠겨 백화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어요. 내 남편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계속 작아진다면, 그래서 더 이상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무리 떠올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냥 그 상황이 닥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선배는 어때? 몸이 작아지고 있는 당사자인데.”

  후배가 말했다. 그전까지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던 남편이 놀란 듯 몸을 살짝 뒤로 뺐다.

  “무섭고 두렵지. 근데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해. 나는 나 자신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끼거든. 어제와 나, 그저께와 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거울을 보면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어. 달라지고 있는 거야. 예전에 맞던 옷이 안 맞고 예전엔 그냥 손을 뻗으면 닿던 곳이 이제는 발을 들어 올려야 닿아. 근데 어디가 아픈 건 아니야. 거울이든 뭐를 통해 나를 봐야지만 내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돼.”

  “선배는 지금 일종의 메타포라고 볼 수 있어요.”

  후배가 말했다.

  “메타포?”

  “작가가 선배를 통해, 그러니까 작아지는 인간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거죠.”

  “왜 하필 나인 거야?”

  남편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처음엔 작가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겠죠. 작아지는 인간이라는. 그리고 고민했겠죠. 이걸 통해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인물이 작아지는 인간에 어울릴까? 그러다 어떤 인물을 만들어냈고 그게 선배인 거겠죠. 그렇게 이야기가 지금까지 흘러온 거고.”

  “너무 부조리해요!”

  그녀가 사이를 뚫고 소리쳤다. 남편과 후배 모두 그녀를 바라봤다.

  “우리 남편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 메타포인가 뭔가에 희생되어야 해요?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일 뿐인데. 그리고 그걸 드러낸다고 해서 얻는 게 뭐가 있죠 도대체?”

  “뭐, 떠오르는 대로 말하면 현대인의 소외 뭐 그런 거겠죠. 사실 문학적으로 보면 좀 진부한 주제이긴 합니다만……, 아! 근데 저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후배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응? 어딜?”

  “아르바이트 면접이 있거든요.”

  그들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후배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면, 선배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 모든 게 이 세계가 문학이라는 가정 하에 하는 말 입니다만…….”

  그들은 인사를 했고 후배는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카페를 나오며 후배는 자기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렸다. 이 세계가 문학이라는 가정. 만약 이 세계가 문학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나는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맺을까? 후배는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제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남편은 엉거주춤 그녀 근처에 서있었다. 밥 먹을래? 남편이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찌개가 든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릇에 밥을 펐다. 밥 먹어, 남편이 말했다. 그녀는 자리에 일어나 식탁으로 갔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국을 펐다. 그들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후루룩 국 마시는 소리, 음식 씹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했다.

  “좋은 생각?”

  “아무리 생각해봐도 작가의 의도 같은 건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이걸 쓰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한테 편지를 쓰는 거야.”

  “편지?”

  “응.”

  그녀는 서둘러 밥을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밥그릇과 국그릇을 비웠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방으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열어 워드프로세서를 켰다. 왠지 모르게 떨려왔다. 숨을 깊게 들아마시고 내쉬었다. 그러다 픽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이 코미디 같았다. 이 세상을 쓰고 있는 존재에게 편지를 쓰다니, 자신이 어딘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았다. 아니, 이상해진 게 맞았다. 자신은 물론이고 이 모든 게 이상했다. 그리고 이상해졌다면 진작에 이상해졌다. 이 이상한 상황을 타파할 방법은 이상한 방법밖엔 없었다. 그녀는 자판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이 쓰고 있는 소설 주인공의 아내입니다.’


  편지를 마쳤을 땐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기증인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거실로 가 물을 한 잔 들이켰다. 화장실로 가 세수를 했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남편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다 썼어?”

  남편이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올라 남편 옆에 누웠다.

  “읽어볼래.”

  “안 돼.”

  “왜?”

  “오그라들어서 안 돼.”

  “아쉽다.”

  그들은 잠시 침묵했다.

  “근데 그 사람이 당신이 쓴 걸 어떻게 읽어?”

  남편이 말했다.

  “그 사람이 작가라면, 전지전능한 존재니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군.”

  그들은 다시 침묵했다.

  “변화가 없으면 어쩌지?”

  남편이 말했다.

  “그땐……” 그녀가 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고마워. 나도 노력할게.”

  이제 불 끌까? 그녀가 말했고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스탠드를 껐다. 이제 어둠 속에 정적만이 남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자? 정적을 깨고 남편이 말했고 그녀는 아니, 라고 말했다.

  “내가 1센티가 돼도 당신 사랑할게.”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이 귀여워서 그녀는 웃음이 나왔다.

  “당신 1센티 될 때까지 내가 가만 안 둬.”

  “되면?”

  “되면…… 그렇게 같이 사는 거지.”

  “재밌겠다.”

  “응. 재밌겠네.”

  “내가 당신 콧구멍 들어가서 청소해줄게. 당신 코딱지 많잖아.”

  그녀는 주먹으로 옆을 쳤다. 남편이 억 하는 소리를 냈다. 그들은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누군가가 잠들었고 이어 다른 누군가도 잠들었다. 그들은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할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작업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노트북이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비밀번호 입력하는 창이 나왔다. 비밀번호는 그들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바탕화면에 ‘작가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파일이 있었다. 나는 더블클릭했고 검은 글씨로 가득 찬 화면이 나왔다. 세 페이지씩이나 됐다. 나는 그녀가 쓴 글을,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분 나빠할 것 같으니 편지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공개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만큼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남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제 장난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창조한 인물에 대한 윤리를 생각했다.

  흔히 작가들은 자신이 인물을 창조하는 건 맞지만 인물이 어느 정도 창조되면 인물은 자기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내가 많은 소설을 쓰진 않았지만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이 소설에서  그녀가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백화점을 배회하는 장면이나 마지막 대화에서 남편이 콧구멍을 언급한 장면은 전혀 의도치 않게 나왔다. 말 그대로 그들 스스로 움직여서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나름대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인다면 그들에게 어떤 윤리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녀가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살짝 공개한다면) 단지 작가의 문학적 성취 혹은 탐구를 위해 인물에게 어떤 불행이나 비극을 전가하는 게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위대한 문학작품, 아니 위대한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어쩌면 문학의 본질 자체가 비극과 불행에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문학 또한 비극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작가가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에 대한 윤리적 기제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에 도달할 수 없다면, 이는 곧 문학의 한계이지 않을까? 방금 쓴 문장은 ‘인물은 자기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움직인다’라는 문장과 상충하는 걸까? 인물이 스스로 움직인다면 이야기는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다. 그러므로 결국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쓰지 못한다. 어떤 작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라고 하지 않던가.

  윤리적 기제와 문학의 한계 사이에서 나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겠다. 이건 앞으로 계속 소설을 써나가며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지금으로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이제 장난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후배가 말한 것처럼 작아지는 인간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것이란 고작 현대인의 소외나 뭐 그 비슷한 것일 테고 문학에서 이런 주제는 이제는 진부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이 시작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이 끝나도 그리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럴듯한 제스처는 필요하겠지. 이를테면 핑거 스냅 같은. 자, 그러면 이제 소설의 마지막으로 들어갈 때다.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다음  그녀는 문득 잠에서 깼다.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사십 분이나    있었다. 새벽의 햇살이 커튼  사이로 살며시 비췄다. 그녀는 옆을 바라봤다. 남편은 등을 돌리고 자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남편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의 몸이 다시 커져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놀라 남편을 깨우려 손을 뻗었다. 그러다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알게  사실이라면 굳이 지금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자고 일어난 다음그래 봤자 앞으로 사십  뒤일 테지만일어나 기쁨을 맞이하면  것이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지난 몇 주 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꿈같은 일들이, 한 편의 소설 같은 일들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날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안았다. 예전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익숙한 그 느낌을, 어쩌면 영영 잃어버릴지도 몰랐던 그리운 그 느낌을 오래오래 만끽하려 했다.

작가의 이전글 15. 작아지는 인간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