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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Dec 21. 2017

지금까지 고생했어

며칠 전 한 아이돌의 비보를 들었을 때, 처음엔 정말 다음 두가지 상황인 줄 알았다. 1) 그냥 오보이거나, 2) 특정 기사를 덮으려고 일부러 오보를 냈거나. 그런데 그 비보가 사실로 밝혀지자 나도, 그리고 주변 친구들도 다들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렇게 대중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연예계에서 음악으로 성공한 사람이 대체 왜?


사람들은 그가 그 일이 있기 전에도 자신의 우울증과 자살 예고에 대해 몇 번이고 신호를 보냈다고 말을 하더라. 그가 얼마전에 팬들과 소통한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그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서, 그가 자신의 옆구리에 새긴 문신으로, 그리고 그의 음악 속 가사로. 


그는 성공한 연예인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에 대한 이미지와 그에 대한 기대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연예인의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았지만, 많은 가수들이 자신의 곡에 써내려간 가사에는 대중 앞에서 사는 것의 고충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서. 연예인의 삶은 연예인의 팬과 대중의 것이었다. 그것도 이미지가 중요했다. 그러니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자신은 속부터 고장났다는 그의 글이 너무 슬펐다. 속부터 고장났다고 느끼는데 그걸 그렇다고 주변에 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구글이나 네이버에 자신의 이름만 치면 자기 자신이 웃거나, 해맑거나, 멋져보이는 그런 이미지가 수두룩 한데, 그 이미지들을 뚫고 대체 어떻게?  이미지가 자신을 덮어버렸을 때 그가 느꼈을 우울이 그의 글에 모두 담겨 있었다.


내가 아무리 그에 대한 기사를, 그의 글을 곱씹고, 그의 sns와 음악을 많이 찾아보고 들어봐도 그가 느꼈을 무력함과 우울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힘들었던 그의 힘듦도.


문득 그런 이미지를 만든 건 우리 모두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그를 항상 밝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이미지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그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을 그에게 이 글을 통해서 대신 전한다. 그의 이미지에 맞서 싸우다 지쳐버린 그에게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지금까지 너무 잘해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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