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시대의 철학」이 주는 시사점
내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그 즉시 뒤쳐지니까.
세상에 나온지 21년 밖에 되지 않았다. 100세시대라고 하니 이제 1/5를 지나온거라고 치자. 내 인생의 0.2 만큼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나를 가꾸고, 나를 계발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는 모두가 쳇바퀴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뭐, 서점에는 자기계발서가 가득하고 이제는 자기'계발'도 아닌 자기'경영'으로 나아가 더 한 차원 고품격으로 자신을 가꾸는 것 같더라. 서점에 가끔 가서 신간과 베스트셀러 칸을 쭉 훑다보면 그 칸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피곤함이 몇 겹은 쌓인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하고, 쉴 때 제대로 쉬어서도 안되고, 항상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거나 알려고 하고, 모르는게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크게는 죄책감을 느끼는 삶.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아신경증'의 흔한 증상이다. 저자는 이에 '행복 테라피'를 주장했지만 나는 이 상황 자체가 그냥 말 그대로 '답이 없다'고 느낀다. 현대인에게는 '행복 테라피' 조차도 자본으로 환산되고 일과 연관된 무언가로 환산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만약 '행복 테라피'가 현대인의 필수 조건이 된다면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서 서열화 시키고 그 안에서 등급을 나눌 사람들이다.
원래 사람들이 그렇다.
소진하는 것이 나쁘다, 또는 잘못되었다, 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나를 잃는 자아신경증이 당연히 좋지도 않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활동하는 자, 즉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활동하는 자'와 '부산한 자'가 높이 평가받는 것이 또 뭐가 나쁘냐? 고 묻는다면 거기엔 또 할 말이 없더라. 어떤 사람이 부산스럽게 활동하는 이유는 분명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이나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것일 것. 그가 그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이 나는 전혀 없다.
저자는 우리가 걷는 이 길을 '문명의 미로'라고 칭하고 부디 이 길에서 길을 잃거나, 헤매거나, 추락하거나, 외톨이로 사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길 바란다니. 미로는 원래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어렵게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누군가 만든 어려운 길이다. '문명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는 것도 현대인들에게는 '수행과제(task)'가 될 것이다.
그러니 치유의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도 이 미로를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치유'는 병이나 상처가 있을 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 미로를 미궁이 아닌 모두가 똑같이 걷는 하나의 길로 바라보면 어떨까. 그 길에서 길을 잠시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속에서 추락하는 경험을 겪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도 한번 쯤 겪어본 경험이다.
그 미로 속에서 내가 나를 소진(消盡) 하는 것은, 그 시대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