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하 Feb 27. 2018

결국, 돌아갈 곳은 내 작은 숲

현대판 동화「리틀 포레스트」를 먼저 만나보았다.

뭐야, 저런게 어디있어!

영화가 끝나고 내 옆자리에 있던 누군가 나지막히 탄식했다. 영화「리틀 포레스트」를 브런치 무비티켓으로 시사회에서 조금 더 일찍 만나고 난 뒤의 이야기다.「리틀 포레스트」시사회가 끝나고 한참 시골 영화 특유의 정적인 감수성에 빠져있었는데, 옆자리 사람의 탄식이 갑자기 내 머리를 띵- 하고 친 것 같았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 저건 영화잖아.'


「리틀 포레스트」는 영화를 감싸고 도는 분위기가 매우 선명한 시골 동화이다. 토마토를 씻지 않고 바로 따서 한 입 먹을 수 있는 영화, 파스타에 꽃잎을 토마토 소스 대신 뿌려서 먹을 수 있는 영화, 밤조림을 만드는 과정이 시각적으로 또 청각적으로 모두 충만하게 충족되는 영화,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걱정을 영화 속 주인공의 친구가 대신 해주는 영화.



집을 나간 엄마를 굳이 찾지 않지만 고향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 없는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임용고시에서 떨어진 후 서울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고향에 내려왔다. 혜원의 소꿉친구 재하(류준열 분)와 은숙(진기주 분)과 함께, 혜원은 어렸을 적 엄마가 자신에게 해 준 요리를 자신의 방식대로 해 먹으며 엄마에 대한 기억을 다시 조립한다.


그리고 혜원의 앞으로 엄마의 첫번째 편지가 배달된다. 편지의 수신인을 보고 편지를 반송해달라던 혜원에게 집배원 아저씨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혜원에게 편지를 건네주는데, 그 사소한 대사와 장면이 왜 아직도 기억이 나는지. 

혜원아, 그걸 읽지 않는 건 너의 자유지만
그걸 배달하지 않는 건 내 자유가 아니란다.

다가오는 미래, 그리고 혜원의 엄마. 그 둘은 혜원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속에서는 혜원의 통장잔고가 어떻게 되는지, 혜원의 취업 사정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에는 혜원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한 끼를 만들고 완성하는 과정이 있다. 가끔은 혜원이 요리를 만들면서 소금을 정량보다 조금 더 많이 넣을 때 누군가는 그 사소한 차이를 귀신같이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렇게 혜원의 요리는 그냥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의 과정으로 계절, 친구, 그리고 엄마와 연결되어있다.



누군가는 편지를 배달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떤 관계를 끝낼 때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야 한다. 혜원은 그런 상황에서 그 '누군가'가 되기를 꺼려한다. 서울에서의 혜원에게는 그 '누군가'로서의 결정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할 시간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랬던 혜원이 고향에 내려가 엄마의 편지를 마주하고, 서울에서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 그리고 엄마의 레시피를 기억 속에서 재정립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의 주체인 그 '누군가'가 된다.


잔잔한 시골 동화 같은「리틀 포레스트」가 주는 여운은 영화가 끝나고 우리의 각박한 현실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야겠다는 다짐에서부터 시작한다. 혜원의 리틀 포레스트는 자신의 고향집,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향집에서 만드는 요리에서 찾은 '혜원만의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뭐야, 저런게 어디있어!'라고 탄식할 수 있지만 그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혜원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았듯, 누구라도 잠시 쉬어간다면. 내 작은 숲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소진(消盡)하는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