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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May 30. 2018

방관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

영화 '디트로이트' 속 방관자들

영화 '디트로이트' 시사회를 다녀왔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기분이 정말 좋지 않았는데, 내가 저번 겨울 미국 연수에서 잠깐 느꼈던 기분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치 거대한 나라에 대한 불편함, 거대한 나라 속 차별 받는 다수에 대한 동정, 그리고 그 다수에 속하지도 못하는 소수의 목소리도 묻히는 현실이 이상하게 뒤범벅이 된 것 같았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나지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낄 때 나는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은데, '디트로이트'가 나에게 딱 그랬다.


'디트로이트'는 1960년대 미국의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알제 모텔 살인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에는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서 인종차별을 일삼는 백인 경찰, 음반 데뷔를 꿈꾸는 흑인 청년, 그리고 투잡을 뛰는 또 다른 흑인 청년이 나온다고 생각하겠지만, '디트로이트'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이 셋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약자 혹은 강자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포함한다. 그러니까, 영화 속 모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가진다.

그러면 안되지, 인권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 대사는 '디트로이트' 속 백인 경찰이 한 말이다. '그러면 안된다'며 '인권'을 주장하는 백인 경찰은 이 말을 한 자신에게 너무도 떳떳할 것이다. 자신은 경찰의 의무를 다 했고, 소위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진압했고, 진압은 했지만 총은 쏘지 않았으니 인권을 지킨 셈이라고. 인권을 지켰으니 된 거 아니냐고 어깨를 으쓱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총을 들고 폭동을 진압한 것'과 '총을 들고 총 쏠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이 크게 다른 걸까? 서로 누가 더 잘했고, 누가 폭력적으로 진압하지 않았는지를 가릴 가치가 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미장센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로 남아있다. 방에 흑인을 몰아 넣고, 문을 세게 차 닫으며 조용히 하라고 협박한 뒤, 허공에 총을 쏜다. 죽은 척 조용히 있으라고 말한 뒤 밖에 나가 '흑인을 죽였다'고 이야기 한다. 또는, 방에 흑인을 몰아 넣고, 문을 세게 차 닫으며 조용히 하라고 협박한 뒤, 허공에 가구와 유리를 던지며 싸우는 소리를 낸다. 밖에 나가 '누가 또 까불고 싶냐'며 다른 흑인을 위협한다. 이 두 장면이 가지는 평행선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대체 누가 폭력을 방관하는 것이며, 누가 폭력을 행사하라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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