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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Dec 20. 2018

《그린 북》의 두 가지 문화

영화 《그린 북》을 브런치 무비패스로 먼저 만났다

지금 사전에 《그린 북》을 검색하면 무슨 책인지 잘 나오지 않는다. 한 때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이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66번 국도(Route 66, 미국의 횡단 도로)를 여행해야한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책- 흑인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식당이나 숙소 등을 정리해놓았다-이었기에 책이 나온 당시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린 북》은 흑인이었던 뉴욕의 우체부가 자신이 겪었던 수치와 불편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든 책이다. 흑인이 안전하게 여행하기 위해서는, 직접 위험한 길을 다녀와 본 흑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미국의 60년대였다.

《그린 북》을 들고 다니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를 에스코트하는 백인 수행기사가 《그린 북》을 들고다니며 그를 보호한다. 미국 전역에 인종차별이 만연했지만 북부보다 남부가 더 심한 시기에 일부러 남부 쪽으로 순회공연을 도는 '돈'과, 그를 온갖 위험으로부터 지키며 순회공연을 끝까지 완수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 '토니'가 영화 《그린 북》의 주인공이다.


'돈'은 자신이 갖고 태어난 피부색과 재능이 사회에서 같은 지위에 있지 않아 힘들어한다. 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음악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흑인 음악가'라면 흔히 연주하는 대중적인 음악이나 그들이 보통 타는 대중적인 루트가 있었다. '돈'은 그런 대중 음악이 아닌 클래식을 연주하는 흑인 피아니스트로서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낀다.

영화 중간에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부의 부유한 백인들은 흑인 피아니스트를 집으로 초청해 그의 연주에 박수를 보내지만, 연주가 끝나면 그 어느 흑인과 다르지 않게 그를 무시하고 멸시한다. 백인들이 흑인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문화이지만,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고 같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도 문화이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사실 미국의 60년대와 지금의 모습은 그 두 가지 문화가 여전히 같이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린 북》은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을 횡단하고 싶을 때 흑인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린 북》은 미국에서 자기 자신이 흑인이 아닐 때 갈 수 있는 곳을 나타낸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주변에는 항상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인종차별이 있다면,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과 행하는 사람이 동시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문화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보통의 우리는 그 중 한 쪽에 어쩔 수 없이 소속되기 때문이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2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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