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록 속에서 연결고리 찾기
역사학개론 시간에 교수님께서 '나의 역사'를 어떻게든 적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형식은 자유였고, 자신의 역사를 적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또한 생각해 오라고 하셨다. 교수님께서는 이 과제가 역사학개론 수업의 가장 첫 시작이자 수업 전체를 뜻하는 개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삶의 기록'도 아닌, '나의 역사'라니!
'역사'라는 한 단어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이 거대해보였지만, 우선은 시작이 반이라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대로 시작을 했다.
#나의_역사 : 첫번째_시도
1997. 울산, 태어남
2003. 안촌유치원 입학
2004. 신기초등학교 입학
2006. 보정초등학교로 전학
2010. 보정초등학교 졸업
2010. 신촌중학교 입학
2013. 신촌중학교 졸업
2013. 보정고등학교 입학
2016. 보정고등학교 졸업
2016. 한국교원대학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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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렇게 써내려가고나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학교만 다니다가 나의 인생이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이렇게 쓰고나니 학교에서의 내 삶이 지금까지 8할은 차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교육사회학 시간에 배웠던 '학교화된 사회 (the schooled society)'라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 '학교화된 사회'는 그동안 학교가 공교육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가, 그리고 어쩌면 내가 학교를 중심으로 맞춰서 변화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만 들으면 그동안의 내 삶의 중요한 포인트나 중요한 순간은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많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로 학교를 입학함과 졸업함과 동시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도 했고 어떤 삶이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화된 사회' 에 나의 역사는 '과연?'이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교를 입학함과 졸업함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저기에 적힌 연도 사이사이에 있는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누락된 것이다. 학교화된 사회 안에서 '학교화'된 것이 있다면 '학교화' 되지 않은 것 또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역사를 담은 첫번째 시도는 그것들을 담지 못했다.
#나의_역사 : 두번째_시도
그래서 두번째 시도로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기로 했다. 좋았다면 적정선 위로, 슬펐다면 적정선 아래로 굴곡지게 그려서 그동안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성기와 슬럼프를 나누어보면 좀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첫번째 시도보다는 훨씬 구체적으로, 년도가 아닌 사건들을 중심으로 나의 역사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첫번째 시도에서의 입학과 졸업같이 단순하게 누구나 겪는 행사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그래프의 중심이 되었다.
이 사건들은 그래프의 곡선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의 시작이 되는 시작점이었다. 예를 들어서 14살에 사춘기가 오고 슬럼프를 겪었지만,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점점 곡선이 올라가는 형태가 되었고, 15살에 사춘기를 극복한 모습은 다시 하나의 점이 되어 나의 역사에서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형식이었다.
나의 역사에서의 중요한 포인트. 그것은 삶에서의 터닝 포인트였다. 역사는 터닝포인트라고 불리는 전 사건과 그 전 사건이 점점 누적되어 현재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3 때 교원대에 원서를 냈기에 교원대에 입학할 수 있었고, 교원대에 입학했기에 교원대에서의 진로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누적된 대과거가 과거를 만들고, 그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첫번째 시도에서 계속 느꼈던 '학교화된 사회 (the schooled society)'에 대한 생각은 버릴 수 없었다. 입학과 졸업년도는 벗어난 인생 그래프를 그렸지만, 그래프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점들이 모두 학교에서 있었던,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든 생각과 고민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나와 같은 한 개인은 학교, 또는 하나의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화된 사회 안에서 학교를 다녔으므로, 학교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해서, 한 개인이 태어난 국가, 그리고 그 국가의 역사 또한 나의 역사와 같은 양상을 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사회를 떠날 수 없듯이, 사회 또한 개개인 없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국가의 역사는 국가의 국민인 개개인이 만들어가는 사건 하나하나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으며, 그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역사가 되는 것이었다. 개인의 역사 또한 사회 양상이 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교육적인 면모들)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만큼 개인과 사회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어떤 연결고리로 묶여 있었던 것이다.
이 연결고리는 앞으로 역사학개론, 그리고 역사교육론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 예전부터 국어와 사회 과목 교과서에서 자주 나왔던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다시 따라 걸으면서 실제로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와 학교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교육사회학적으로는 '가시화 된 것의 비가시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학교화된 사회'안에서 나에게 학교화 된 것과 학교화 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 그것들 또한 차근차근히 탐구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안에서의 수많은 개인 중 한명이 나라면, 그 수많은 연결고리 속에서 나만의 연결고리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