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회학적으로 바라본 책임. 그리고 '탓'
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가?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는 사형수와 사형수에게 ‘사형’이라는 처벌을 내린 국가와의 관계를 개인과 사회의 관계로 더 넓게 해석한다. 이러한 관점은 푸코가 책 전체를 풀어나감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관점이다. 책 이름 자체가 개인이 서로를 '감시'하며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처벌'을 내리는 것이 '판옵티콘'으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서 모두가 서로에게 행하고 있는 것을 비유하기 때문이다.
푸코에 따르면 '판옵티콘'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속해있는 감옥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동안 체제를 탓하지만 개인이 체제를 탓하고 무지몽매한 또 다른 개인을 탓해왔다. 그렇지만 그것이 마치 덫에 걸린 쥐가 함께 덫에 걸린 쥐에게 '덫이 그곳에 있음을 몰랐음'을 탓하고 '덫이 그곳에 있음'을 탓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아주 잠깐 다른 이야기로 넘어오자면, 최근에 '탓'하는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생각을 통해 어느 순간, 탓을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탓)를 그 일 앞에 붙이면, 나중에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상황이 어떻다' 고 합리화 할 수 있어서 나를 비롯한 모두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상황의 탓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탓을 하는 나 자신은 생각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일에 대한 원인은 항상 외부 사람들에게서, 환경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푸코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가 판옵티콘으로 대표되는 사회로부터 저항적이고,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외부의 탓을 항상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탓을 하는 것 자체가 주체로서의 인간이 가질 태도는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그런 맥락에서 모든 사회가 공평해야하고, 사회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관계들이 모두 공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역사에도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이념은 있었지만 모든 관계가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는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의 요지는 공평하고 공정함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탓'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말을 줄이겠다...) 사회에는 늘 공평함과 공정함 대신에 계층과 계급이 존재해왔고,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역사를 반복하며 (마치 우리나라에서 아무 대책없이 핵 발전소를 물려주듯이) 옛 것이 만들어진 옛 것에 편승하고 그 다음 새로운 것에게 책임을 넘기는 모습을 가져왔다.
나는 '탓'하는 것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더불어서 아주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의지 존재 여부를 숨기면서 자신의 권리와 의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사실 자신의 의지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건지, 의지가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를 내야하는 상황에 침묵하고 바쁜 일정을 내세우며 회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어떤 상황에서 지켜야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고 그것을 지키고 싶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불합리한 것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누군가 내가 먹으려고 했던 초코파이를 훔쳐 먹었을 때 화를 내는 것 같은 사소한 경험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 초코파이를 훔쳐먹었다는 것을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문제화 시키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어떻게 할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판옵티콘 안에서 개인이 역사에 쉽게 편승하지 않고 새로운 흐름-어쩌면 '나만의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을 만드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것'이 원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모두 어떤 기준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 기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준을 나로 삼는 것이 권력 속에서도 주체가 되는 것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 속에 예속되는 누군가를 탓하고, 권력 자체를 탓하기보다는 생각의 중심을 나 자신에게 돌려 자신의 권리와 의식을 되찾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아는 사람, 그리고 자의식을 깨달은 사람은 판옵티콘에서도 다른 개인과 다른 사회와 상생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