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와 정부, 그리고 우리의 삼자대면
제약산업은 인간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분야로, 정부의 엄청난 규제 속에서 이루어지며 다른 산업 분야처럼 자율적인 시장의 원리에 맡겨놓지 못한다. 그래서 정부는 약의 가격을 제한하거나 국민 보험을 적용해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공룡 제약사' 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제약산업은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의료' 분야에서 아픈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목적 외의 다른 목적 또한 가지고 있다.
우선 병을 고치는 약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연구와 개발 단계를 거친다. 이를 줄여서 R&D(Research & Development, 연구&개발) 단계라고 부른다. 우선 '연구' 단계는 가장 창조적이지만 불확실한 단계이다.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계이기도 하다. '연구' 단계에서 인체에 가장 안전한 물질을 개발하거나 합성하는 방법을 찾게 되면, 바로 '개발'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개발' 단계는 '전임상'과 '임상' 단계로 나뉘는데, 이 때 제약회사가 개입하게 된다. '전임상' 단계는 동물과 세포 배양 실험으로 치료약의 후보 물질의 특성을 연구하는 단계다. '전임상' 단계를 통과하면 '임상' 단계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가장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약가가 비싼 이유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아무튼 '임상' 단계는 약물의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점차 임상 실험 대상을 늘려가 총 3단계로서 임상 실험을 마친다.
우리는 보통 제약회사가 나쁘고, 아픈 국민들이 제약회사의 이윤추구 때문에 항상 피해를 본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시중에도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불량 제약회사> 등등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르고 더 넓은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제약회사의 지나친 이윤추구를 반대하는 윤리적인 관점에서, 제약회사와 국가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꾸어 제약산업과 규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제약회사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할 때, 신약개발로 얻는 이윤을 그들은 '창조적 지식 창출의 보상' 이라고 부른다. 약을 개발함에 있어 임상 전과 후의 단계를 총괄하는 것이 바로 제약회사라는 말이다. '제약' 자체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회사'는 이윤 추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가 아닌 여러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제약회사이기 때문에 신약을 국가차원에서 전적으로 개발하지 않는 이상 '환자만을 위한 약'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픈 이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제약회사'에 대해서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무작정 약의 보편화와 그들의 개발 유인인 이윤 추구를 줄이는 것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과 함께 희귀병과 그 국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희귀병은 국민건강보험 적용의 경우가 상이한 케이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희귀병 코드가 등록되어있는 경우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정말 극소수가 걸리는 희귀병의 경우에는 코드가 등록되어있지 않아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서의 요지는 바로 '약을 개발했을 때의 수요'와 '약을 공급했을 때의 이익'이다. 약의 수요가 극히 적은 희귀병 같은 경우에는, 제약회사가 개발하고자하는 유인이 전혀 (희귀병 환자가 분명 존재하지만) 없는 경우에 속한다.
건강보험 또한 마찬가지이다. 구글이나 네이버에 희귀병이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를 검색해보아도 그 사례나 그를 비판하는 글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거슬러 찾아보면 바로 '희귀병 관련법의 부재' 라고 나온다. 관련법이 존재하지 않고, 무엇보다 희귀병의 정의가 모호해 누락되는 환자가 생기는 일이 발생한다고 누구는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라면, 앞서 말했던 국가(정부)의 '제약회사에 대한 규제'와의 논리가 전혀 맞지 않게 된다. 국가(정부)가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병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그에 필요한 약에 대한 규제는 행하면서 질병의 정의가 법으로부터 나온다면 법은 왜 애초에 정말 극소수의 희귀병 환자들에 대한 법은 제정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게 될 것이다. 일반 질병에 대해서는 보험을 제공하고 제약회사에 대한 규제를 행하면서 희귀병에 대해서는 정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지경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정말 많다. 사실 의료분야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곳에서 책임 전가를 기반으로 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이루어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제약회사와 국가로 표방되는 정부가 모두,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유 없는 행동은 없듯이, 신약개발과 관련된 제약 산업의 일 또한 모두 철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진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제약회사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아픈 국민은 신경도 쓰지 않고 기업의 이윤만을 챙기는 욕심 많은 기업으로 비유되고, 국가가 희귀병 환자들에 대한 법이나 정의를 정하지 않고서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를 자처해서 만든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무언가를 바라본다면 두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아야한다. 기업의 윤리와 국가의 윤리 중, 누가 윤리를 더 지키지 못했냐를 떠나서 어느 것이 더 높은 윤리적인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단순한 약값이나 보험이라는 표면적인 결과물에서 보이지 않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면 기업도, 국가도, 아무도 우리에게 그 과정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