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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Oct 01. 2017

그림자의 디자인

Shadow of Shadow-Stare, 김영원

 우리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나의 몸, 그리고 나의 정신은 항상 내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나와 함께하며, 내 이름을 구성하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의 뒤에 항상 달고 다니는 존재가 있다. 바로 나의 그림자, 그림자는 색이 없는 무채색이다. 그래서 무채색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해진다. 우리가 겉을 아무리 꾸미고 치장해도 그림자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색이 되어서 만난다. 그림자는 그래서 우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날 때 가장 공정한 모습이다.

우리의 몸은 어쩌면 하나의 실체가 아닌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를 구성하는 다른 어떤 실체가 있을 것이다.

 김영원 작가는 그림자에 빗대어서 우리의 인체, 몸은 어쩌면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허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를 감싸고 있는 포장지 같은 것이 몸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된다면 몸은 허상,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실체는 다른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림자의 그림자-바라보다 (Shadow of Shadow-Stare)』에서는 그림자가 그림자를 바라보는 구도로 우리의 인체를 표현한다. 그것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인체가 반으로 나뉘어 인체와 인체 사이에 빈 공간이 있는 모습이다. 빈 공간은 단지 빈 공간이 아니라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빈 공간으로 인체의 단면, 그리고 인체가 가리고 있었던 공간의 모습이 사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체와 인체의 단면 사이로는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갈 수 있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 중 하나는 우리의 진심, 속마음, 그러니까 내면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의 모습을 다른 한 단면이 하나와 합침으로써 바깥으로부터 보이지 않게 가리고 있다. 김영원 작가는 ‘부조를 떼어내어 공간에 세우면 그 이면은 존재감만 있고 텅 빈 평면의 공간, 어떠한 환영도 투영 가능한 열린 모습이 된다’ 고 했다.


하지만 ‘그 앞을 자가 복제되어 나온 욕망의 벽이 가로막고 외부세상과의 진정한 소통을 방해 한다’ 고도 하며 인체를 둘로 나누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인체는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큰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내면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체를 반으로 나눌 수 없으며, 영원히 서로가 서로를 마주본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김영원 작가는 이 모습을 ‘인간에 대한 무한한 연민의 노래’라고 지칭한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그림자의 그림자-바라보다 (Shadow of Shadow-Stare)』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인체는 둘로 나뉘는 양상이지만 온전히 나뉘지 못한다. 온전히 나뉘지 못한 모습 속, 그 틈 사이에서 서로의 진심을 발견하지만 진정한 소통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작품 안에 담겨있다.        

               

 『그림자의 그림자-바라보다(Shadow of Shadow-Stare)』의 디자인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인체를 실체가 아닌 허상으로 보고 과감하게 반으로 나눈 것에 있다. 그리고 인체를 반으로 나눈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반으로 나누어서 새로 생긴 인체와 인체 사이의 공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 공간 사이에서 진심과 속마음이 보이지만 서로의 진심을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작품을 보면서 인간의 여러 모습 중 하나는 작품의 제목처럼 서로를 모른 척, 또는 안 보이는 척 하면서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품 속 상황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면, 그림자의 그림자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지 않고, ‘그림자’라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그림자는, 앞서 설명했듯이 모두가 똑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공평한 방법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림자로서 그림자를 바라보고, 서로가 서로를 모른 척하고 바라만 보기에 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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