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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하 Oct 15. 2017

치열하게, 도전

내 삶의 원동력은 '도전하는 힘'

인간은 치열하게, 더 치열하게 사는 것에서 삶의 원동력을 찾는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 사는 것이 치열하다는 것을 느낀다. 항상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할 수는 없어도, 삶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치열하게 사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인간이기에 가능하고, 인간이기에 치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예전 교육학 전공 시간에 불변의 진리에 대해서 토론한 적이 있었다. 불변의 진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를 3시간에 걸쳐서 진행했다. 그때 내 발표자료로 쓰지는 않았지만 나는 혼자서 불변의 진리는 인간이 치열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삶의 한 관문을 통과하고 다음 관문을 위해서 준비하는 삶을 우리는 산다.


오랫동안 적을 둔 같은 마을에서의 초, 중, 고등학교에서의 졸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또다시 다른 학교로의 입학을 했다. 늘 그랬듯, 나는 학교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매번 지나쳐버리는 것과 같았다. 무슨 일이든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기에, 기회를 놓치는 것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 안타까운 일인지 아는 나로서 더더욱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새로운 일들에 도전할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지 않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예전에 쉽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들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도전에 따르는 어려움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이전에 해보지 않은 일들을 시도해보는 것은 통과의례처럼 늘 힘들었다. 그렇게 나서기 싫어하던 내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앞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앞에 나서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되기까지 부끄러워서 혼자 얼굴을 붉힌 적도, 민망함에 안 보이는 곳에서 울었던 적도 많았던 것이다.


그런 힘든 순간들이 그 다음을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뭐든지 내 손으로 나에게 어진 일을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인지, 내가 상대적으로 못한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정이 떨어질 법도 한데, 계속 못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만들어서 내가 그것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자기 고문이라고 했다. 하긴 그럴 법도 했다. 내가 잘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못하는 일들에 나를 계속 내던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보고 있었으니까.


치열하게 사는 것은 마음 편한 대로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늘 나 자신을 도전의 반열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일이다. 당장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비로소 진짜 내 것을 찾을 수 있는 긴 여정에 나는 있었다. 그 여정 속의 나는 계속 나 자신을 실험대에 올려놓고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좋아하는 일 속의 하기 싫은 일이나 잘하지 못하는 것들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오늘도 살고 있다. 남들이 자기 고문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나여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치열하게 도전하는 것이 내 삶방식이었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그토록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 도전을 하지 않고 내가 삶을 살아왔던 순간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하고 싶은 일에의 도전,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에의 도전, 그리고 '아... 나 그거 못하는데.' 하고 매번 피했던 일을 잘해보고 싶어서 하게 되는 도전... 도전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우리가 매번 시도하는 그것은 '시행착오', 또는 '한번 해보기'와 같은 단어로 바뀌었을 것이다.  


도전이 나 자신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냥 제자리일 뿐이다. 매번 새로운 일을 할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를 놓친 건 지난날들로 충분했다. 망설이고 생각만 하다가 그렇게 기회를 놓쳐버리면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는 것은 이미 많이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금 무모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선지가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늘 하겠다고 택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두려움을 매번 이겼던 것 같다. (나는 뭐든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를 잘 안다.)


그렇게 무모한 도전들을 하고 나서, 힘든 순간들도 많다. 처음부터 도전의 순간이 짜릿하고 보람찬 것은 아다.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이 알고 보니까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었다던지, 나의 사고 자체가 훈련이 많이 되어있지 않으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지, 일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의견 조정을 하면서 모든 사람의 생각은 정말 제각기 다름을 느낀지. 나에게 늘 도전은 그의 이름에 따른 힘듦을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도전하게 되는 일들은 내가 잘하는 일들이 아니다. 내가 배고 싶어서, 내가 나의 역량을 지금보다 더 키우고 싶어서,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들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도전, 또 도전, 새로운 일에, 새로운 나의 모습을 시도해보고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깨달음을 얻는다.

앞으로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도전은 그래서 짜릿하고 늘 삶의 중심이 된다.

도전하는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도전의 연속에서 발견하는 나의 모습. 그 모습이 결코 예쁘고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그 모습이 쌓이고 쌓여 결국 도전하는 나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도전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도전을 통해서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 도전하는 나는 성장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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