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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험설계사 홍창섭 Nov 24. 2020

님아 제발 계약 좀 하지마오~

섭이의 보험 이야기

생각해보면 루키때, 아무것도 모를때 보험일이 제일 쉬웠다. 


CI보험, 갱신보험등 대표적인 나쁜 보험으로 가입한 고객님들을  만나면, 

자신만만하게 더 좋은 상품으로 해약, 변경, 리모델링을 했었다. 


보험료는 낮추고, 보장을 넓혀주는 것 같아 보람도 있고, 사실 '돈'도 되니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정말 별의별 일들을 다 경험하고 보니,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계약하고 1년만에 암에 걸리는분, 

일주일 일찍 발견되어 보험금이 반만 나오신분

계약하고 1주일만에 큰수술을 하시는 분, 

계약하기로 한 전날에 크게 사고당하신분, 

계약하고 6개월만에 뇌출혈로 쓰러지신분,

계약 전날, 건강검진에서 이상소견 나오신분

그리고 돌아가신분.... 등등....


그래서 보험금 지급을 위한 적부심사가 나오고, 보험금 지급이 지연되고,

생각도 못한 병원 기록이 튀어나고, 보험가입 안되고, 계약이 강제 해지되고, 

정말 별별 일들을 경험하다 보니, 계약하나 하기가 더 힘들어 졌다. 


동일 이름의 특약이라 할지라도 회사마다 면책부분이 미묘하게 다르고, 이 또한 계속 바뀌고,

지급 기준도 다 다르고, 시기마다 다르고, 근데 신상품은 끝도 없이 쏟아지고, 

약관은 또 수시로 바뀌는데, 상품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교묘해진다 .

이 걸 도저히 다 알수가 없어서, 그리고 도저히 다 관리할수가 없지만,

그래도 공부를 안하고 팔 수는 없었다. 


나이, 직업, 경제상황, 가족력, 가족관계, 성향, 성격, 장래 희망 등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받기

시작했고, 아플때 안아플때 돈이 있을때 없을때, 일찍일이 생겼을때, 아무일 안생겼을때

죽었을때, 안죽었을때, 살면서 벌어질수 있는 모든 위험들을 떠올리며, 그 사람이 감당할수

있는 보험료의 범위내에서 최대의 보장 범위와 최고의 보장액을 위해. 그리고 제일 좋은 회사

제일 좋은 플랜을 짜려고 하니, 한명 한명 상담과 계약에 걸리는 시간이 오히려 점점

더 늘어만 갔다. 


보험리모델링 해달라는 고객님의 보험을 이틀 고민하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은 보험을 찾지를 못해서, 

메인보장을 줄이고 사실 없어도 크게 중요하지 않는 화려한 옵션이 잔뜩 붙은 

보험을 차마 권할수가 없어서, 

다들 쉽게 하는 죽어서 나오는 보험깨고, 당장 타먹을일이 많은 보험으로 바꾸는 리모델링은

차마 하기가 그래서...그랬다가 죽으면 내가 감당할수 없으니까..


'그냥 놔두시고, 부족한 부분만 조금더 보강하시면 될것 같고, 

보험료 부담되시면 굳이 더 안해도 크게 문제 없을것 같아요'

'지금보험을 이렇게 활용하면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충분히 커버할수있어요'


그런데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 해도,

이미 기존 보험에 불신이 생긴 고객님은, 결국 본인이 원하는대로, 리모델링을 할것이다.

본인이 하기 싫어도, 열심히(?) 하는 설계사님들의 등쌀에 못이겨서 결국 하게 될것임을


그럴꺼면,그래도 내가 해주는게 좋을것 같아서, 또 맡아서 분석하고 연구하지만,

언제나 내결론은 비슷하다. 


내 별난 성격을 아시는 우리 고객님들은 그래서 내 의견이나 내가 내린 결론에 

어떤 이의나 의심을 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 그어떤 설계사들 보다 별별 고민 다해보고, 찾은 최선의 플랜이란걸 아신다. 

물론 사실은 다른걸 하고 싶으셨더라도, 내가 얼마나 고생했을지를 알기에, 

왠만하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주신다. 

그런걸 아니까 나는 더 고민을 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많은 상담을 하지 못한다. 한명 상담에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절대적으로 시간도 부족하고, 내가 지치고 에너지 고갈이 심해서, 상담을 못한다. 

그렇다고 사장님들을 상대로 하는 고액 계약을 하는 설계사도 아니기에, 

언제나 매달 참 빡빡하다. (그래도 소득이 적지는 않다)


상담 방법이나 습관을 좀 바꿔야 하는데, 좀 쉽게 쉽게도 가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활동력 극강, 실천력 짱인 설계사들이 참 많다. 


영업인은 심플해야 한다. 

머리가 아닌 발로 움직여야 한다. 욕심을 가지고 목표가 있어야 한다.

활동력을 높여야 한다. 

매일 3명이상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더 좋은 상품을 계속 권하고, 또 바꿔줘야 한다. 


이걸 실천하는 분들을 우리는 고실적 설계사라 부른다. 

아침 30분 교육받은 것만으로, 바로 전화를 하고, 바로 찾아가서 계약을 받는다.

설계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 이야기 하는거 들어보면 아는게 하나도 없는데, 

전화한통으로 보험 증권분석 어플이 시킨대로, 보험리모델링을 마무리 한다. 


밖에서 사람들만 계속 만나는데, 계약은 계속 이어진다. 

'열심히 한다' '참 부지런하다' '참 붙임성 좋아'


정말 대단한 분들인것은 맞지만,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직업에 충실하고 

좋은 상품을 열심히 파신건데, 

그런 분들이 계약을 할때마다. 마음이 좀 아프다. 


과연 저 상품의 문제점은 설명했을까? 왜 굳이 저 상품을 팔지? 

10년 넘게 보험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찾고, 꿈꾸고, 함께 하고 싶은 좀 느릴수는 있어도ㅡ

발이 아닌 가슴으로, 활동력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설계사들은 사실 점점 살아남기가 어렵다.


특히 온라인 보험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광고를 보고, 설계사가 아닌 고객이 선택한 '상품'만을 가입하는 보험시장에선

착한 설계사들의 자리는 점점 없어진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 적극적인 설계사들에게 대면 시장을 뺐기고, 

더 많이 자극적인 광고를 하고, 쉽게 쉽게 상품을 파는 온라인 설계사들에게도 밀린다. 

실력과 활동력이 같이 있는 설계사는 정말 귀하다.


그렇지만,

대~~단한 보험 설계사님들이 이제 좀 계약을 안했으면 좋겠다.

그럴듯한 말빨대신 팩트와 진심으로 계약을 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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