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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험설계사 홍창섭 Jun 25. 2020

첫 번째 사망보험금 지급

                            

(혹시라도 유가족에게 누가 될 수 있어서 개인의 신상이 노출될 수 있는 내용은 최대한 빼고 조금은

각색을 해서 적어본다. )


형님은 나보다 서너 살 더 많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능력도 있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무엇보다 아내와 가족을 너무 사랑하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워낙 꼼꼼하고, 스스로 다 알아서 하는 성격 탓에, 스스로도 이미 많이 보험 공부도 하셨고, 가입하고 유지하고 계시던 종신보험을 해약하고, 보험을 새로 준비하시려고 하던 차에, 내가 보험 일을 한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수년간 연락도 끊긴 나에게 먼저 전화를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형님 성격을 알고, 워낙 화목한 가족임을 알기에, 책임감이 정말 강하셔서, 당연히 생명보험을 정말 튼튼하게 준비하실 것 같았다. 몇 년 만에 찾아뵐 때도, 먼저 연락까지 주셨으니까, 생명보험 설명을 드리면 감동해서 솔직히 쉽게 계약하실 줄 알았다.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상담을 시작하니, 형님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내가 죽어서 나오는 건 필요 없고, 와이프도 좋은 직장 다니고 있으니,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고, 나도 건강 잘 챙기고 있으니 그럴 일도 없고, 내 살아있을 때 많이 타 먹을 수 있는 건강보험으로 부탁해. 생명보험은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해약한 거고...



평소에 책임감 강하고, 가족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생명보험을 좋아하는 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형님이 생명보험이 필요 없다는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다. 


당시에도 일이 힘들 때였는데, 형님 연락받고는, 마음 한편으로는 '하늘이 이제 돕는구나' '형님은 생명보험 설명드리면 정말 만족하시면서, 어쩌면 제법 큰 계약을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있었던 거 같다. 


그랬던 형님인데, 처음부터 당신은 절대 생명보험, 종신보험은 필요가 없고, 암보험이나 타 먹을 수 있는 보험만 이야기하셔서 당황스러웠다. 형님이 원하는 보험은 손해보험사의 건강보험인데, 당시의 나는 교차판매(생명보험사 설계사가 손해보험사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오직 사망보장에만 집중하던 시기여서, 형님의 요구를 들어드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형님이니까, 잘 설계해서, 다시 말씀드리면, 그땐 하시겠지 하며, 이후 배운 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사망보장을 종신보험과 정기특약을 섞어서 3억 정도(마음 같아서는 5억 정도 하고 싶었으나) 하고 암등 건강특약을 넣은 설계를 해서 다시 만났다. 


다시 열심히 생명보험의 가치와 필요성을 이야기하고는, 이렇게까지 하는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보험료도 적당하니까, 설령 맘에 안 들어도 그냥 사인해 줄 것이라 믿었던 거 같다. 


그러나, 한참을 보던 형님은 이건 아닌 것 같다면서 결국 계약을 거부하셨고, 사망보장은 하나도 필요 없고, 그거 다 뺄 수 있으면 하겠는데, 이렇게 사망보장이 많은 보험은 할 수 없고, 좀 생각해봐야겠으니, 다음에 연락 주시겠다고 하시며, 상담을 마치셨다. 


그 이후에 형님은 바쁜 일정 등으로, 다시 만나기가 어려웠고, 그렇게 결국 어떤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채로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거 같다. 그리고 다시 푸르덴셜에 드디어 헬스케어 보험이 출시가 되었고(생명 보장이 있기는 하지만 이름이 헬스케어) 이 상품을 핑계로, 형님도 그래도 나한테 가입을 해주시겠다는 마음은 있으셨는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역시나 나는 또 형님이 모르시길 바라며, 몰래 사망보장을 좀 더 올려서 가입을 권했는데, 여전히 형님은 사망보장에는 동의하지 않으셨고, 사망보장을 최대한 빼 달라, 줄여달라, 특약 하나하나 다 살피고 물어보시면서, 결국 조금 서로 양보하면서, 최종 가입을 하셨다.



돌아보면, 그땐 아직 신입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융통성이 없기도 했지만, 워낙 가족애가 남달랐던 형님이어서인지, 더 강하게 생명보험을 이야기했던 거 같다. 


서로 끝없이 논쟁하고 있으니, 함께 듣던 배우자가 나서서, 이제 그만하고, 충분히 알겠고 내 진심도 알겠지만, 형님 해달라는 대로 하고, 형님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라며, 그만 마무리하자고 중재를 해서, 그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내가 이야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 후에도 그렇게 최선을 다해 설득을 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계약을 마무리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형님의 암 발병 소식을 들었다. 그냥 단순 종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암이었다. 가입 1년 이내 암이면 50%밖에 지급이 되지 않아서, 순간 1년이 지났는지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1년이 지나서 다행이었다. 


한참 뒤에 알았는데, 당시 형님의 암 보험금이 나는 두 번째 지급이어서, 내가 뭘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고, 워낙 푸르덴셜에 대한 신뢰가 높았던 터라, 보험금 청구하면 바로 나오는 줄 알았다. 다행히 수술만 하면 괜찮다고 해서, 알아서 다 청구하실 수 있다고 해서, 그런가 하고, 또 가만히 있었다. 지급 과정을 내가 챙겨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드려야 하는지 전혀 모르던 때다 




수술 잘 마치셨고, 일상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당연히 그냥 바로 암 진단금을 받으셨으리라 생각했는데 한참 뒤에 물어보니, 당시에 빠른 시기의 암이기 때문에 손해사정인도 나오고, 실사를 통해 거의 한 달의 심사를 거쳐 어렵게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말은 내가 다 책임진다. 보험금 잘 나올 거다고 이야기해놓고, 사실 전혀 신경을 안 쓴 거다. 만약 혹시라도 의무 기록에 이상이 있어서 보험금이 안 나오는 상황이 생겼다면, 어찌 될뻔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내가 좀 더 미리 알고 챙기고, 청구해드렸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암 투병만으로도 힘드셨을 형님이 보험금 청구로도 시달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형님은, 너무나 고맙게도, 조금도 나를 원망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지급된 것을 고마워하셨고, 앞으로 더 열심히 재밌게 사시겠다며 편안한 웃음을 지으셨다.




당시.. 지금도 여전하지만.. 아무래도 사망보장으로 들어가는 보험료가 많다 보니, 손해보험사 상품에 비해, 보험료 대비 진단금이 적다. 형님도, 형님이 원하는 대로 설계를 했다면, 가입을 했다면, 훨씬 더 많은 암 진단금을 받으실 수 있으셨을 텐데, 괜히 내가 사망보장만 이야기하는 바람에, 암 진단금으로 2천만 원밖에 받지 못하셨다. 




이것도 참 미안했다. 보험료는 엄청 내시는데 (20만 원이 넘는 보험료) 암 진단금은 고작 2천만 원이니 형님 원했던 대로 설계를 안 해준 내가 원망스러울 만도 한데, 턱없이 부족한 그 보험금에도 고마워하셨다. 




그 일 이후, 나도 좀 더 진단금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고, 이후 고객님께는 교차판매를 활용해서, 암등 진단금을 좀 올리는 설계를 한 것 같기는 하다


(제일 어려운 게, 사망보장을 하다 보니 그래도 진단금이 상대적으로는 적을 수밖에 없다 )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한 번씩 찾아뵐 때면, 열심히 운동도 하고 살도 빼고, 건강관리 잘하고 있다고, 물론 사실 항상 재발의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즐겁게 살고 있다며 편안한 웃음을 지으셨던 형님에게 완치 판정이 내려질 즈음 그렇게 걱정했던 암 재발이 되었다.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두고, 그렇게 사랑하는 와이프와 아이들, 엄마보다도 더 아이들을 살뜰히 생겼던 자상한 아빠는 급속도로 건강을 잃어갔다. 




그렇지만 정말 강했던 형님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하게 정말 강한 암과의 사투를 벌이셨고, 너무나 소중한 남편과 아빠를 살리기 위해 배우자도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형님을 살리기 위해, 전 세계 논문을 뒤져가며, 신약부터 임상 야기 등 조금이라도 기적을 바랄 수 있는 치료제가 있으면, 얼마의 비용이 들더라도 해외에서 구해 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의사보다 더 그 암의 전문가가 되어, 형님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고, 형님도 가족들을 위해, 버티셨다. 




반복되는 힘든 수술과 입원 속에서, 너무나 힘든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형님과 가족들은 희망을 놓치지 않고, 항상 웃으셨다. 살 수 있다고, 절대 못 보낸다고,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다행히, 나한테 가입한 보험 말고도, 직장 단체 보험 등에서 많은 진단금과 보험금이 나와서, 그 엄청난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나한테 가입한 보험에서는 진단금 외에 수술비와 입원비가 결과적으로는 진단금 보다 더 많이 나왔고, 여기저기서 나온 보험금 덕분에 물론 보험이 없어도 치료는 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편하게, 지속적인 치료를 할 수 있었다. 그 상황이 되니, 다만 얼마의 보험금이라도 정말 소중했고, 조금 더 진단금을 준비해드리지 못한 미안함이 계속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수시로 보험금 청구를 해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그래도 너무나 고마워해 주셨다. 너무나 큰 힘이 된다고, 고맙다고,.. 다행이라고..




그렇게 1-2년의 치열한 투병을 마치고, 정말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기고 형님은 떠났다. 끝까지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오직 남겨진 가족들이 형님이 떠난 후에라도 잘 살 수 있게, 후회나 아쉬움 없게, 형님답게 끝까지 책임을 다 완수하시고, 사랑하는 가족품에 안겨 세상을 떠나셨다.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기억을 남겨준 형님이었기에,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 생명보험금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또 미안했다. 


아직 어린아이들.. 형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내 앞에 겨우 5천만 원의 생명보험금은 너무나 부족했다. 




진단금도 적고, 생명보험금도 적고, 너무나 미안했다.


그때 양보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당장 계약이 급해도 더 강하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러면 어쩌면 5천이 아니라 1억, 3억을 드릴 수도 있었는데..




선배님들은 보험금을 지급하면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온통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보람은커녕 더 많이 드리지 못함이 미안하기만 했다.




오히려 유가족들이 나를 위로해 줬다. 내가 아니었으면 절대 이 정도도 준비 안 했을 거라고, 정말 고맙다고, 덕분에 이만큼 치료하고, 버틸 수 있었다고, 절대 미안해하지 말라고... 형님도,.. 본인도 조금도 나를 원망하지 않고 고마워한다고..




참 힘든 일이란 걸 깨달았다. 보험금은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항상 부족하고, 건강할 때는 가장 아까운 게 보험료다. 조금이라도 지금 해주어 좋은 게 아니라, 더 많이 드리지 못함이 미안한 일이었다. 




막연히 실적에 대한 부담보다, 과연 내가 소중한 사람들의 아픔을, 죽음을 계속 봐야 하는 이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미안한 마음 투성이인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 계약하는 것이 겁이 나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생기는 게 무서웠다. 




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잘 가입해야 하는지를 아는 만큼 내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도 커졌다. 




형님이 떠나고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여전히 나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비슷한 또래여서 와이프랑도 같이 한 번씩 만나서 노는 사이인 미망인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빠~ 나는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인 거 같다.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 없이 치료를 다했고,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남편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미련이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 살 수 있다. 


병원비로 아파트 한 채 값이 들기도 했지만, 여기저기 받은 보험금 덕분에, 

힘들지만, 지금 크게 어렵지 않게 살 수 있고 고맙다고.. 


그리고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거 인정하고 사는 거 정말 중요한 거 같다고, 


나도 정말 몰랐는데 막상 정말 건강했던 

남편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갑작스럽게 닥치고 나니 

너무 힘들더라.


미리 좀 준비했다면 

어쩌면 조금은 더 편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은 든다고..


그때 오빠가 생명보험 이야기했듯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어. 

누구든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그냥  그 사실 인정하고 살면 된다고

편하다고..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낸 사람들 

모임에 가보면 

다들 참 후회와 미련이 가득한데,

 나는 그런 게 전혀 없어서, 

정말 다행이고, 


결국은 다 돈의 문제 기는 하지만


단순히 보험뿐만 아니라,

그냥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고 산다는 게 

정말 중요하단 걸 


자신은 

이제 알겠다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단순히 보험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 그냥 당신이 언제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으니, 그냥 그걸 인정하고 미리 준비하시고, 

오늘을 더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형님^^ 잘 지내시죠?  항상 곁에서 OO 이와 아이들 지켜주고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선 아프시지 마시고, 더 행복하게 


더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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