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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Dec 20. 2023

하던 일이 꼴도 보기 싫어질 때

그림 : 앙드레 브라질리에 - 발루아의 저녁


올해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십여 년 넘게 해 오던 일을, 그 업계를 완전히 떠나버렸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가장 크게 다가오네요. 뭐 대단히 성공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때 일을 즐거이 했던 적도 있었고, 나름의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현타 아닌 현타가 왔습니다. 일이 아주 잘 풀리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일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닐까요. 잘 풀릴 때보다 안 풀릴 때가 더 많은. 그렇기는 했지만 오히려 일을 시작한 이후 가장 고액의 급여가 통장에 꽂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인스타나 SNS를 보면 월 천, 월 억이 쉬운 얘기 같지만, 직장인이라면 그게 정말 힘들다는 걸 누구나 알겠지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만큼 받기 위해 얼마나 고생해 왔는지 똑똑히 기억하던 시기, 그리고 이보다 더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더 큰 조직을 이끌어야만 한다는 걸 아는데... 그들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 할까? 앞이 막막했고, 도무지 자신이 없었고, 안갯속에 갇힌 것만 같았고, 미로 속에 파묻힌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즐거이 해왔던 일이, 나름 인정도 받았던 일이 꼴도 보기 싫어진 겁니다. 처음 약 1년은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인했습니다. 이 정도 감정은, 이 정도 일을 해온 사람들이 흔히 겪는 걸 거야.... 아무리 스스로 부인해 봐야, 마음속에서 꺼져 버린 불씨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이전과 다른 일에 대한 애정과 몰입, 늘어나는 실수들, 스스로도 어찌할 바 모를 무기력과 비관주의로 드러났습니다.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건강도 나빠졌죠.


그때만 해도, 좀 쉬면 다시 불씨가 살아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 쉬기도 해 보고, 조금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 보기도 하고, 일을 파격적으로 줄여보기도 하고, 명상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친 방황, 그 끝에서 발견한 건, "아, 나는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속에 숨어있던 진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십여 년 간 해오던 일에 있어서는 경력도 있고, 평판도 있고, 인적 네트워크도 있었지만 그것을 떠난 순간 바보가 되어버릴 것처럼 두려웠거든요. 아직 은퇴하기엔 어린 듯했고, 평생 먹고살만큼 벌어두지도 못했으며, 무엇보다 '그럼 뭘 하지?'에 대한 답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요즘에야 창업을 하려고, 또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하고 싶어서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이게 싫다'는 것만 알았지, '무엇을 하고 싶다'를 찾지 못한 상태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결국 떠날 것을 택했지만, 올해는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지며 내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익숙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달라진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줄어든 공감대에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고, 그간 쌓아왔던 것들이 모두 허물어지고 다시 무엇을 하든 처음부터 해야 할 것만 같다는, 현실자각의 시기였다고 회고할 수 있겠네요.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올 때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좌절감도 느꼈습니다. 나름 멘털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정말 멘털이 '바사삭-' 한다는 게 뭔지 알겠다 싶었죠. 그렇게 바닥을 찍은 건지 지금은 좀 편안해지긴 했습니다. 어디서든 뉴비로서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일을 하며 쌓아왔던 무수한 인간관계가 물에 빠진 솜사탕처럼 녹아 사라진다는 것도요. 언젠가 다시 웃으며 만나 또 다른 인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그렇게 두어야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다행이라면, 꼴도 보기 싫어진 일을 계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보다는 지금이 조금은 더 편안하고 건강하다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어디선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동물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물은 이진법으로 산다고요. 자기보다 강한 동물을 만나면 도망치고, 약한 동물을 만나면 싸우고요. 본능적인 거죠. 우리도 결국, 어떠한 순간에는 단순한 기준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고요.) 결정을 어렵게 하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두려움들이지만, 두려움이라는 것이 사실은 연기와 같아서 대체로는 실체도 없다는 것을, 손을 몇 번 흔들어 날린 후 뚫고 나가기 시작하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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