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바쿠후 그림 <비어(날치)>
요즘 삶이 참 단조롭습니다. 바쁜 일도 없고, 무거운 책임도 없고, 그저 비슷비슷한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게 지금 제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시간이 참 많을 것도 같은데, 또 대체 뭘 하다 하루를 보낸 건가 싶을 때도 많고요.
글도 꾸준히 써야지, 책도 꾸준히 읽어야지, 악기연습도 꾸준히 해봐야지, 조금씩이라도 공부도 꾸준히 해야지... 이렇게 큰 목표 없이 꾸준히 무엇인가 하는 습관, 즉 루틴을 만들어보자 매번 마음은 먹지만 어느 날엔가 돌아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꾸준한 습관 만들기' 중 하나였는데요. 매주 한 편을 쓰는 건 여유롭겠다 생각했지만, 어쩌다 보면 한 주가 훅 가있지 뭐예요.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으니까, 오늘은 좀 바빴으니까, 오늘은 좀 기분이 안 좋으니까 또는 좋으니까... 하면서 미루다 보니 한 주, 두 주...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이제 좀 활력도 돌아와서, 다시 꾸준하게 무엇이든 해보자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이 단순한 루틴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왜 이렇게도 어려울까? 생각하다 보니, 꾸준히 무엇인가를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 없던 어떤 게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기대감과 욕심 말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글을 썼다면,
좀 더 잘 써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는다면,
무엇인가 결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꾸준히 했다면,
조금 더 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처음에는 그저 즐거움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꾸준히 반복되면서부터는 필요도 없는 기대와 부담을 감당해야만 됐던 거죠. 그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기대와 부담이 쌓이다 보면... 자꾸 미루게 되고,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고, 일 같아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항상 살면서 "열심히도 중요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와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이런 소일들은 취미에 가까운,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주는 에너지 충전 활동들이었는데... 반복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열심히 해야 해, 나아가서 더 잘해야 해'하는 생각을 하게 됐던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뭐라고 그렇게 무겁게 느끼고 있었나 '풋-' 웃음이 나더라고요. 이제 와서 전문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악기연주가가 될 것도 아닌데, 연구자가 될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언젠가 어떤 목표를 향해서 또 열심히, 잘하고자 노력할 때가 오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그저 즐기면서 하루하루 잘 살기만 하면 되는데요.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꾸준함'이 중요한 모든 영역에서 '기대'나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게 참 중요할 것 같다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서 '즐거움'과 '뿌듯함' 한 스푼씩은 더하고요. 어릴 적 살았던 경상도에서는 '애살이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무엇인가를 열심히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도 때로는 덜어내야만 할 때가 있나 봐요. (표준어로 뭐라고 해야할지...)
꾸준히 무엇인가를 습관으로 만들고 싶을 때, '그저 오늘도 즐거웠다, 일단 했다-!' 정도의 소박한 기대와 마음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습관이 될 수 있을까요? 나중에 다시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