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카예하 <No art here!!>
이런저런 일들로 오래간만에 글을 써봅니다. 저는
한참이나 전에 백수가 되었고, 남편도 최근에 백수가 되었는데요. 아직 나이도 있고, 먹고살아야 하니 무엇이든 해볼 요량이긴 하지만, 회사에도 다니지 않고 딱히 (아직은)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상태를... ‘백수’라는 말 외에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둘 다 십여 년 넘게 계속 일을 해오다 갖게 된 휴식기이기에 처음에는 낯설었고, 마냥 좋다기보다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점차 이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학창 시절에도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한다는 과제가 있었기에 이런 자유가 얼마만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아요.
게다가 간절히 기다렸던 아기가 올 가을즈음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보니, 이 자유도 곧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기의 등장 이후에는 그 작고 여린 생명을 건강하게 키우고자, 부족함 없이 키우고자 안팎으로 바빠질 테니까요.
요즘엔 아침을 느지막이, 든든히 챙겨 먹습니다. 하루에 세끼를 챙기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활동량이 줄어서인지 배도 그리 고프지 않아 하루 두 끼 먹는 생활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을 든든히 - 점심은 간단한 간식 - 이른 저녁을 든든히. 보통 노년 은퇴하시면 이렇게 많이 드신다던데... 저희에게도 맞는 방법이 아닌가 싶어요.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각자 책을 읽거나 소일을 하다 출출해질 무렵 옥수수나 감자, 수박, 복숭아 같은 간식을 챙겨 먹습니다. 그러자면 왠지 까마득한 기억 속의 여름방학이 떠오릅니다. 더위에 나른하기도, 편안하기도 했던 어떤 순간들이 말입니다.
참, 19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에 살다 보니 매년 여름 온수가 끊기는 이벤트도 있는데요. (2024년 서울에서?!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진짜로 그런 곳들이 있습니다. ㅎㅎ)
워낙 덥다 보니 조금 나가서 걸으며 몸을 데우고 나면, 뜨거운 음식으로 조금 땀을 내고 나면 ‘앗차거’ 하며 찬물로 샤워하는 것도 금방 익숙해진다는 게 또 재미있습니다. 그러다 어떤 하루는 수영장에 가서 뜨끈한 물로 씻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반적인 퇴근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른 저녁을 먹고 다 치우고 나면... 왠지 하루가 여유롭고 길게만 느껴집니다. 해도 길어져 아직은 대낮 같은데 오늘의 과제를 모두 끝낸 기분이랄까요?
특별히 여행을 가거나 쇼핑을 하지도,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않는 이런 생활도 심심하긴 하지만 그래서 더 중독성이 있습니다. 달고 맛있는 과자보다 심심한 과자에 더 손이 가는 것처럼요.
왠지 참 자연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낯선 여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소중한 여름방학이라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