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삶이란 뭘까? 저는 이 생각을 한참이나 늦게 했습니다. 원래 성격이 무디고 털털해서 정리정돈도 잘 못합니다.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기도 했죠.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웬만하면 그저 맞추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30대를 전후하여,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며 쓸데없이 좋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다 쌓아두었습니다. 잘 버리지는 못해서 그저 모아두었다가, 결혼 전 이사할 때는 100리터 봉투 열댓 개만큼 버리고, 당근도 몇 박스를 했고, 아름다운 가게에 몇 박스나 기부하기도 했어요.
정리하면서 보니 구매한 기억조차 없는 것도 있었고, 기억은 나는데 대체 왜 산 걸까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 내 통장이 텅장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때 깨달았죠.
반대로 화초서생은 오래전부터 미니멀리스트였습니다. 정말로 기쁨을 주는 물건만,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있었죠. 그만큼 하나를 살 때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결혼을 할 즈음, 아무래도 제 물건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합의가 되었기에 저는 제 물건들을 덜어내는 ‘마(음의)상(처)’을 입고 말았습니다. 화초서생도 나름대로 ‘너무 많은 물건’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다고 하네요.
그 시간을 거쳐 지금은 중간 수준에서 적응하고 있습니다. 저는 좀 더 필요와 욕망의 프레임으로 물건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화초서생도 ‘물건이 조금 더 있어서 편리해지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언젠가 ‘맥시멀리스트’라는 말이 유행했고, ‘미니멀리스트’라는 말도 유행했는데요. 왠지 ‘미니멀리스트’라면 적지만 매우 고가의 고급 물건들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제 편견일까요?
‘미니멀리스트의 삶’과 ‘소박한 삶’은 조금 어감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후자가 더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저는 후자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여하튼, 주변을 단조롭게 꾸미고자 마음먹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건, 그리고 지금도 가장 어려운 건 ‘욕망’을 분명히 아는 일인 듯합니다. 결국 모든 선택은 ’ 욕망‘위에서 이루어지기에 제 안에 있는 무수한 욕망들을 정의하여 줄 세워 볼 필요가 있겠죠.
소박하다는 것은, 사전적으로 ’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하다 ‘는 의미라고 합니다.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진짜 내 욕망’을 먼저 알아야 그것들로 주변을 꾸밀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처음 샤넬박스를 풀었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제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걸 수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한 번도 샤넬백이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에 없습니다. (이따금 디올백은 예뻐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들 사니까, 결혼식장이나 동창회, 지인 모임에 갈 때는 왠지 샤넬백 정도 들어줘야 할 것 같으니까 샀습니다. 그런데 그 박스를 처음 풀었을 때,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이 돈이면 여행을 한 번 더 갔을 텐데, 맛있는 것도 수십 번은 더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마사지를 받을걸 그랬나? 등등. 그때 ‘아, 나는 경험형 인간이구나’ 싶었습니다. 물건보다는 즐거운 경험이 더 좋은, 꼭 경험해 보아야만 깨닫게 되는.
샤넬백은 제 욕망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만한 걸 들 깜냥이 되지 않았던 거기도 하고요.) 누군가의 욕망일 수는 있었겠지만, 제 건 아니었던 거죠. 제 욕망은 외려 ‘나도 이 정도는 번다, 당신들만큼은 성공했다’하는 인정욕구에 불과했습니다. 정말로 샤넬백이 예뻐서 필요해서 가지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정도 들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거죠.
소비를 줄이고자 마음먹고, 이런 제 것이 아닌 욕망, 비뚤어진 욕망, 어리석은 욕망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후드득 소낙비 떨어지듯 리스트가 채워지다, 이제는 가랑비처럼 천천히 채워지긴 합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나이를 먹으며 새롭게 탄생하는 욕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욕망의 제한선을 두었습니다. 최소한 이런 기준에는 부합할 것, 그리고 그 기준을 통과한 다섯 번째 욕망까지만 채우자, 열 번째 욕망까지만 채우자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욕망이라는 게 너무 강해서, 자꾸만 그럴법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들을 만들어 내거든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자가복제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주 눈을 부릅뜨고, 요놈 어디 숨지 않았나, 요놈 이렇게 분장하지 않았나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 안에서 탄생하고 변화하는 욕망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도, 그것과 타협하지 않고 저만의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것도, 그리고 나아가 제한선을 두는 것도... 정말 어렵지만, 소박하게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욕망들이 날뛰게 두면, 절대로 소박해질 수 없을 테니까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쓸데없는 욕망들을 덜어내기만 해도, 훨씬 가벼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