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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Dec 05. 2023

삶에 고통이 찾아오면 소박하게 보내주어요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나한테만 이래!!”





허공에라도 이렇게 외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한꺼번에 몰려오더라고요. 의도와 무관하게 일이 틀어지고, 나 또는 타인을 힘들게 하고, 자책과 원망을 멈추기 힘든 순간들이요.


힘겨운 순간을 다루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는 싸우거나, 얼어붙거나, 도망친다고 합니다. 저는 완벽한 회피형입니다. 이럴 때 동굴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통제가 가능해질 때까지 숨어 지냅니다. 학교나 회사는 나가지만 가능한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냈습니다. 이런 시기를 겪을 때마다 가족들은 답답해하고, 친구들은 떠나기도 했죠. 연인과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별이었죠.


그러다 결혼 결심을 하고서는 저 스스로 두려워졌습니다. 살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찾아올 텐데, 남편과 아이를 두고 도망갈 수는 없을 테니까요. 도망가기 싫어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배우기 전에는 눈을 감고 고요한 상태에 머무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하면 머릿속에서는 생각들이 허리케인처럼 몰려오고, 피부는 가렵고, 다리는 저리고...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불편감을 참고 견디는 것이 명상인 줄 알았죠.


몇 년째, 꾸준히는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뜨문뜨문 명상 공부를 이어오면서 ‘아,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구나‘ 깨달았습니다. 명상이 평온으로 가는 비밀의 문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명상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재로 오는 비밀의 문이었죠.




가려우면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가 이미 긁고 있습니다. 다리가 저리면 저도 모르게 뻗어 버리죠. 화가 나면 저도 모르게 화를 냅니다. 이러한 자동적인 반응들은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과하면 나와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순간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아주 잘 알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가렵다고 벅벅 긁다가 피 흘리기보다는, 다정하고 부드럽게 가려움을 가라앉힐 수 있고, 다리가 저리다고 안절부절하지 않고, 적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가 날 때도 덮어놓고 소리부터 지르기보다는 더 지혜로운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명상은 매 순간,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연습이었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알아차리면, 필요한 방식으로 돌보거나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거나, 분노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삶의 고통이라 하기엔 너무 약하다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명상은 불교철학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갈래로 발전되어 왔는데요. 비교적 과학적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마음 챙김(mindfulness)' 명상 역시 불교 철학, 그러니까 부처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가르침에서는 고통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통증, 상실, 거부할 수 없는 불편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등의 명백한 고통, 2) 행복과 사랑, 만족이 영원하지 않음에서 오는 변화에 따른 고통, 3) 통제 불가능하도록 계속해서 변화하고 복잡한 세상의 상태 그 자체로 인한 고통.


그리고 이 고통은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욕망은 완전히 충족될 수 없는 갈망과 같은 것으로, 1)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2) (원하는 것) 존재에 대한 욕망, 3) (원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는  욕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욕망에 대한 집착이 곧 고통이 되는 것이죠.


살다 보면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소한 일부터 충격적이고 믿을 수 없는 일들까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는 벌어지고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어찌할 도리 없이 벌어진 상황을 ‘첫 번째 화살’이라고도 하는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나에게 와서 꽂힌 걸 어쩌겠습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나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겠죠.


중요한 건 그다음이라고 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혹은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버리면 ‘두 번째 화살’이라고 부르는,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은 피할 수 있다고요. 참 익숙하고도 식상한 말이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알아도,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때가 바로 명상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마음 챙김 명상이요.




그저 현재로 돌아와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내는 겁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밥을 먹고, 물줄기를 느끼며 샤워를 하고, 바람을 맞으며 걷고, 내 몸의 상태를 느끼며 움직이면서요.


그렇게 소박하게 삶에 찾아온 고통을 보내주는 연습을 하다 보면, 무슨 일이 생겨도 도망치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어 든든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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