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아닌 은퇴 생활, 그러니까 30대 백수 생활이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가만히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면...
산책이나 운동도 하고, 밥도 해서 챙겨 먹고, 취미로 몇 가지 배우기도 하고, 미술관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공연도 보고, 가끔 친구나 지인이나 가족들도 만나고...
이거 은퇴한 고령의 어르신의 한 주 같잖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활에는 몇 가지 장단점이 공존합니다.
먼저, 회사 다니며 열심히 일할 때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확연히 낮아져요. 스트레스가 줄어서 그런지, 무엇인가를 강하게 원하는 수준도 낮아졌어요. 쇼핑이나 여행, 파인다이닝 등등 말입니다. 일할 때는 스트레스받아도 충분히 해소할 상황이 되지 않다 보니 (돈도 없긴 했지만)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보상성 소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쉬기 시작한 이후로는 운동도 여가도 충분히 할 수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욕구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낍니다. (줄이는 삶을 선택했기에,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다 보니 편한 옷 몇 벌 외엔 거의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에 신뢰감을 주기 위해 깔끔하고 멋지게 입을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이만큼 산다, 이 정도는 여유 있다’ 과시할 일도 없어졌죠. 매우 좁은 인간관계 외에 사회적 관계도 많이 줄었으니까요.
반면에, 그로 인한 외로움과 소외감, 뒤처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제 몫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하고서 자발적 백수의 삶을 택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래서 오래간만에 아직도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나, 과거 함께 일했던 직장동료들,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을 만나려고 하면, 그리고 만나면 왠지 작아지는 기분이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꿀리는 거죠.
승진을 했다더라, 무슨 차를 샀다더라, 어디에 집을 샀다더라, 이야, 명품으로 휘감았네....
그 와중에 재미있는 점은,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으나, 마주하고 있는 각 개인의 태도가 보이는 것 같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과시하고, 어떤 이는 위로받고자 합니다. 어떤 이에게서는 여유와 지혜가 느껴지고, 어떤 이에게서는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저 스스로 그들에게 원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어지니, 어떤 판단도 불필요하다 생각하니, 그들의 행동이 그대로 보이기 시작하나 봅니다.
그러면 문득, ‘그래, 꿀릴 것도 없지.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내 한 몸은 건사할 수 있잖아. 사회에 큰 기여는 하지 못해도, 해를 끼치지도 않고 말이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이른 백수시기를 거쳐, 돈을 위한 노동이 아닌, 스스로 의미를 느끼는 일을 하게 되기를 바라며, 꿀리지만 꿀릴 것도 없다고 스스로 토닥토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