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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쩐구 Jul 23. 2023

33살 결혼 전까지 엄마가 사준 옷을 입었다

내가 운동화 한 켤레 사면서 그토록 고민했던 결정적인 이유를 박혜란 님의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을 읽고 인식했다.


어떤 엄마는 딸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그날 입을 옷을 양말부터 모자까지 골라 준비해 놨다가 입혀 보내곤 했다. 꼬마 패셔니스타라는 별명을 얻은 딸은 대학생이 된 다음에도 옷을 살 때면 반드시 엄마와 동행한다. 혼자서 머리핀 하나도 못 고를 정도로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이 없는 탓이다.

-박해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p. 45-46


나는 33살 결혼 전까지 엄마께서 사주신 옷을 입었고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께서 사주신 옷을 입는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도 내 선택에 자신감이 없어 엄마와 다시 같이 오거나 사진을 찍어서 보냈었다.


내가 나름 고심해서 준비한 선물이나 혼자 결정해서 산 물건들은 90% 엄마의 핀잔을 받았기에 난 선택이 몹시 두려웠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때 당시의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나의 선택이 틀릴 것 같아 불안했다.


선택 장애가 생긴 것도 모르고 엄마는 사사건건 엄마에게 의지하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주위 사람들도 요즘 세상에 이렇게 착한 아이 없다며 칭찬하셨다. 엄마 뜻대로 사는 삶, 선택할 필요가 없고 집안의 평안을 지킬 수 있어 쉬웠다. 머리가 점점 크면서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고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으로 인한 미안함, 무력감이 종종 느껴졌지만 그때뿐이었다.


결혼 전에는 감히 내 뜻을 밝힐 생각도 못 했고, 결혼 후에는 내 삶을 조종하시려는 엄마에게 내가 내 뜻을 밝히며 몇 번의 마찰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자마자 임신하기를 원하셨기에 결혼한 이후로 매일같이 집요하게 나를 달달 볶으셨다. 결혼한 지 2개월 만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6개월 만에 인공수정을 하고, 1년 반 만에 시험관을 통해 결국 임신을 하게 되었다. 결혼한 지 막 반년이 되어가는 무렵, 매일같이 전화하셔서 말끝마다 임신 이야기를 하시는 엄마께 용기를 내어 카톡을 보냈다. 전자파가 인체에 해로워서 임신을 방해할 수 있다고 컴퓨터 작업도 못하게 하실 정도로 극성이었다. 스트레스받아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르며 최대한 다정하게 엄마께 카톡을 했는데 엄마께 이런 답장을 받았다.


엄마는 이런 분이다. 소통이 불가한. 매번 소통을 하려고 해도,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연락을 끊으라고 하셨다. 어릴 적부터 나는 감히 뜻을 가져볼 꿈도 꾸지 못했다. 꿈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 결혼 초반까지만 해도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몇 번 겪은 후로는 더 이상 “엄마”라는 단어에 눈물이 예전처럼 나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어린 나이에 큰딸로 온갖 고생을 다 하시면서 살아오신 우리 엄마, 착하지만 돈 버는 능력은 부족했던 아빠 대신 지금까지 고생만 해오신 우리 엄마, 자식을 위해 1분 1초 허투루 쓰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오신 우리 엄마... 동생은 말했다. 우리처럼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러신 거니 우리가 이해하자고. 엄마는 엄마의 최선을 다하시고 계신 거라고.


​내 마음이 평온할 때는 엄마께 죄송한 마음도 들고, 안쓰럽고, 잘해드려야겠다 수없이 생각하지만. 막상 부딪치게 될 때면 정말 너무 힘들다. 이번주 주말에 엄마께서 동생과 함께 오셔서 이곳에서 보름 정도 계실 것 같다. 저번에 같이 있을 때 엄마께서 빨리 친정으로 돌아가시기만을 바랐었는데... 이번에는 과연 어떨는지. 벌써 긴장된다.


​나는 박사까지 공부하고도 꿈이 없는 내가 참 한심했다. 꿈이 없을뿐더러 많을 일에 있어서 뜻도 없다. 신발 한 켤레 못 고르는 나 자신이 싫었다.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 부러웠고, 남들이 보기에 터무니없을지라도 자신만의 확고한 꿈이 있는 사람이 멋있었다.


​아이가 좀 크면 국제 학교 같은 곳에 원서를 지원해 보라는 엄마의 또 다른 압박을 최근에 몇 번 들은 후로 내 꿈을 이제라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블로그를 10년 넘게 써왔었고, 지금도 꾸준히 쓰고 있다. 블로그 이외에 매일 손으로 일기도 쓰고,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고 싶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막연하지만 일단 글 쓰는 연습을 해볼까 한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집중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기 때문에 한동안 이렇게 뭐라도 써보려고 한다. 사실 한국어로 쓰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 어휘력도 제한적이고, 표현도 미흡하다. 하지만 내 뜻을 찾지 않으면 또 엄마 뜻에 따를 수밖에 없기에 내 뜻을 찾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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