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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쩐구 Aug 02. 2023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기 싫었다

나의 이상형은 나중에 나의 아이가 커서도 “우리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혹은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오래도록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


옆지기는 어린 나이에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성품적인 면에서 매우 훌륭하다. 베풀 줄 알고, 투덜거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런 옆지기를 결혼하고도 꽤 오랫동안 진심으로 존경했었고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인정한다. ​


어릴 적에 아빠께서 틈만 나면 TV 보시는 모습이 너무 싫어, 나는 TV 보는 남자랑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포인트를 잘못짚었던 것 같다. TV를 보고 안 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포인트다. 옆지기는 TV는 잘 보지 않지만 많은 현대인들처럼 핸드폰을 잘 때까지 본다. 그리고 결혼 전에는 하지 않았던 게임을 아이가 태어나면서 갑자기 시작하더니 주말에만 네다섯 시간씩 한다. ​


물론 핸드폰을 통해 나름 공부도 하고 유용한 정보도 많이 접하겠지만 열에 다섯 번은 인스타를 보거나 유튜브로 영화를 보거나 내가 보기에는 의미 없는 것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아빠 모습이 오버랩되며 한심하게 느껴진다. 존경하는 마음은 어느새 점점 사그라들었고, 탐탁지 않은 마음만 깊어가는 것 같아 고민하던 중에 아래 문장을 보고 생각을 전환하게 되었다.

박혜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p.71

여기서는 부모가 자신의 분신 같은 아이를 통해 꿈을 이루려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부 사이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을 옆지기를 통해 보완하고 이루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아빠”를 아이에게 안겨 주고 싶어 옆지기가 내 뜻대로 책도 열심히 읽고 늘 공부하는 모습을 연출해 주기 바랐다.

원래 공부하던 사람이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공부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옆지기에게 애초에 이건 말도 안 되는 요구다. 독서하는 습관은 어릴 적에 잡아주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는 절실함 없이는 형성되기 가장 힘든 습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옆지기가 일하는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여름에는 욕 나올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뼛속까지 찬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춥다. 집에 돌아오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은 게 현실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계발에 힘써 퇴근 후 인생의 제2막을 열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또한 누가 밀어붙여서 되는 게 아니다. ​


옆지기나 아이가 내 뜻대로 해주길 바라는 대신 아무리 나이를 먹었더라도 내가 도전하는 게 훨씬 의미 있고 빠를지도 모르겠다.


박혜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p.86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이었다. 아이가 어떻게 살든 아이와의 관계를 늘 따뜻하게 이어가는 엄마. 즉 사랑에 조건이 없는 엄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게 엄마의 사랑이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많은 조건과 요구를 제시한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취직을 잘해야 하고, 결혼을 잘해야 하고... 마음 같아서는 잘하고 싶지만 때로는 잘 안될 때도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럴 때마다 쿨하게 “괜찮다”라고 말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는 엄마는 몇이나 될까? 특출 나게 키웠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식이 실망스럽고 답답해서 매정한 말을 하면서 상처를 준다.


​요즘 #부부관계 에 대해 고민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이 문장도 부부관계에 대입시켜 보았다. 옆지기가 어떻게 살든 옆지기와의 관계를 늘 따뜻하게 이어가는 게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장 성공하는 길이다.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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