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쩐구 Aug 17. 2023

돈은 있는데 취향은 없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책장에 언제 산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새 책이 매우 많다. 책을 예전보다 적게 사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사다 보니 읽지 않은 책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이 싫지 않다. 이게 내가 원하던 책장 모습이니까.


내가 책을 읽고 싶을 때 이미 읽은 책이 아닌, 서점처럼 가득 쌓인 새 책 사이에서 고르고 싶다. 이왕이면 신간도 가득했으면 좋겠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런 책도 많았으면 좋겠다.


어떤 책을 읽을까 하고 책장을 훑어보다 눈에 들어온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책 제목은 분명 많이 들어봤는데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 보니 로맨스인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읽다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문장을 마주하는 순간 찌리릿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휘청거렸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은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라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p.86-87)


그녀는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녀는 적어도 자아가 있었던 적은 있는 것 같다. 나와는 다르게.


불혹이 다 되었는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취향이 없어서 고민이다. 나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고를 줄 모르는, 정확히 말하면 “선택”에 있어서 늘 긴장이 되고 때로는 두렵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선택을 늘 주위 사람들에게 떠넘기거나, 부득이하게 내가 꼭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을 때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으면서 사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문장은 이거다. “돈은 꽤 있는데 취향은 없는 것 같아. 내가 먹고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런 부류지.” 꼭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뭐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먹고살 만은 한데, 안타깝게도 취향이 없다.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알아가는 게 목표다. 나중에 좀 더 나이 들어서 “돈은 꽤 있는데 취향은 없다”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 이제라도 서서히 알아가야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결말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 조금은 아쉬웠지만 어쩌면 나 또한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작가의 이전글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기 싫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