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tal : 네번째 이야기
언젠가 수첩에 끄적여 둔 짧은 글귀가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삶의 매 순간을 꾸준히 기록하다 보면 과거에 내가 한 말이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미래의 나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가 삶의 매 순간을 기록하는 이유입니다.
때론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도
기쁘거나 행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것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어요.
Interviewee
LIFEPLUS 앰배서더 4기
최정완(백제예술대학교 미디어음악과)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순간을 기록하며 사는 26살 최정완입니다.
순간을 기록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매 순간의 느낌, 감정, 온도와 같은 기억들을 나중에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저장한다는 뜻이에요. 때론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도 기쁘거나 행복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것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그런 감정이나 생각, 사람이 점점 희미해지더라고요. 살면서 하루하루를 축척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싫었어요. 그때부터 하루하루를 남겨놓으려 했던 것 같아요. 삶의 매 순간들을 잊지 않고 하나하나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에 기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 순간을 기록한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해요?
중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특별한 감정이 들었을 때 들은 노래를 몇 개월 후에 들었는데 당시의 감정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제가 순간을 기록하는 이유는 당시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고 싶어서인데, 음악은 꼭 손으로 적지 않아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제가 직접 곡으로 쓴 건 아니지만 그때가 기록의 시작이었다 말하고 싶습니다.
원하는 선택을 했을 때
가장 힘이 나요.
저는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경험 이후 자연스럽게 음악을 통해 순간을 기록하게 된 거네요. 기록들이 본인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일단 음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죠. 처음엔 그저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는데 너무 좋아지니까 이쪽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래는 음악과 관련 없는 분야를 전공 중이었는데 좀 더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우고자 3개월가량의 반수를 했어요. 그 결과, 드디어 미디어 음악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 당시에 쓴 일기를 보면 굉장히 막막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죠. (웃음) 그렇지만 반수를 준비하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 음악을 못 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어요. 입시를 생각하게 된 것도 이전 학교에서는 음악 전공이 아니다 보니까 독학으로 음악을 하는 데 한계가 따랐기 때문이었거든요. 이러다 연습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다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지금 어떤 부분이 달라졌어요?
전보다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음악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그 당시 일기에 빼곡히 적혀 있던 불안감도 사라졌어요. 학교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보고 음악에 관련한 과제나 공연을 하면서 제가 몰랐거나 편협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다는 걸 깨닫곤 해요. 그러니 취미로 시작했던 음악이 점점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요즘은 당장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보고 제 스펙트럼을 넓혀 나갈 수 있는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득 지금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네요.
정해진 틀 없이 연주곡을 쓰거나 기타로 여러 곡을 커버하고 싶어요. 이런 것들이 굉장히 편하고 재미있지만, 요즘 트렌드로 봤을 땐 악기 하나에만 갇히지 않는 개성 있는 플레이가 돼야 오래 연명하는 음악가가 되는 것 같아요. 해야 할 것은 각 악기에 대한 자세한 공부겠죠. 같은 음악이라도 악기마다 표현되는 힘이나 느낌이 다르거든요. 누군가 제 곡을 들었을 때 ‘이건 누가 들어도 최정완이 쓴 곡이다!’라고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저만의 스타일을 갖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고요.
‘최정완’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보기 좋네요! 아무래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동기유발이 되기 때문이겠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했을 때 가장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원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큰 틀에서 고민하고 있어야 하죠. 저는 이런 주로 음악이라는 큰 틀의 고민 속에서 크고 작은 선택을 해왔던 것 같아요. 물론 내가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은 때가 생기기도 해요. 저 역시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하기 싫은 부분들이 있거든요. 이럴 때 제가 우선시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더욱 집중하다 보면 흩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요. 가령 열 가지 이유 중 여덟 가지가 싫어도 두 가지 좋은 점만 있다면 반드시 끝까지 해내는 것 같아요.
혼자서 말하고 말한 것들 듣는 과정에서
자기 객관화가 된다고 할까요?
스스로에 대해 기록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제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가 질문할게요. 주로 어떤 방법으로 순간을 기록하나요?
주로 일기를 쓰거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들은 그때그때 적어 두는 편이에요. 갑자기 떠오르는 가사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고, 책에서 본 감명 깊은 글귀일 수도 있죠. 언제든 적을 수 있도록 노트와 펜을 늘 가지고 다녀요. 폰에 적는 것보다 오래 기억에 남고, 글씨를 쓰는 느낌이 좋아서 수기로 작성해요. 카페에서 생각나는 말이 떠오르면 급하게 티슈나 종이컵에다 적어 놓고 따로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이건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방법인데 어떤 감정이 들었을 때 그냥 방에서 녹음기로 혼잣말하는 것을 녹음해 두었다가 들어봐요.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참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있던 감정을 스스로에게 털어놓게 되거든요. 생각이 정리되죠. 제 생각을 바로 알고 난 뒤에는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우려고 노력해요.
굉장히 신박하고 영리한 방법 같아요!
혼자서 말하는 걸 들어보면 자기 객관화가 된다고 할까요? 스스로도 몰랐던 부분 또는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 중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말이에요. 저는 스스로에 대해 기록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제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폴라로이드 촬영 사진도 굉장히 좋네요. 역시 순간을 기록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오롯이 그 찰나의 순간만을 기록할 수 있어요. 요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한 장의 베스트 컷을 위해 셔터를 계속 누르게 되잖아요. 그런데 폴라로이드는 딱 그 한순간만 나오는 게 매력적이더라고요. 폴라로이드에 찍힌 것들이 오직 그 순간에만 있었던 표정, 날씨,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정확한 찰나의 순간을 남기기에는 폴라로이드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앞에서 언급했던 것들 외에 본인을 기록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아, 얼마 전에는 영정사진을 찍었어요.
영정사진이요?
네. 만 25세가 되는 날, 그 순간의 저를 특별하게 기록해주고 싶었어요. 영정사진을 찍는 것도 스스로를 기록하는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겨봤어요. 고등학교 때만 해도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잘 쓰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정사진을 찍으며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라 생각하고 유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유서를 통해 제 좋지 않은 모습을 반성하고 죽이기(?) 위해 노력했고요. 사실 확실하게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들을 잘 죽여나가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순간을 기록하는 것은 내가
나일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인 것 같아요.
순간의 기록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고 그것들을 기억하게 해줘요.
자아를 찾는 과정인 셈이죠.
이 사이에 끼워져 있는 명함은 뭔가요?
절대 그냥 끼워져 있는 건 아니고요(웃음) 저는 책갈피를 따로 사지 않아요. 이렇게 명함이나 영화표, 기차표 같은 것을 책갈피로 쓰고 있어요. 이런 책갈피 하나에도 순간을 기록하길 즐기는 제 습관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작지만 다양한 순간이 모여 현재의 최정완을 이루고 있는 거네요.
그렇죠. 결국 순간을 기록한다는 것은 내가 나일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인 것 같아요. 순간의 기록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고 그것들을 기억하게 해줘요. 자아를 찾는 과정인 셈이죠. 사실 중학교 때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힘들었어요.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죠. 그때부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지금까지 말했던 음악적 기록이나 일기 쓰기, 혼잣말 녹음하기 같은 혼자만의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순간의 기록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고 그것을 기억하게 해줘요. 자아를 찾는 과정인 셈이죠.
정신이 건강할수록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긍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순간을 기록하는 일 역시
늘 좋은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 시작한 거고요.
마지막으로 질문 세 가지 공식 질문드릴게요. 최정완에게 ‘책갈피’란?
순간에 대한 향수 같아요. 사실 영화표나 명함 같은 것들이 잃어버리기 쉬워서 그 순간을 금방 잊을 될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자주 보는 일기장이나 책에 끼워 두게 되면 책갈피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영화관에서의 기억, 추억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어 유용한 것 같아요.
당신의 삶에서 Mental Wellness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정신이 피폐해지면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들어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반면 정신이 건강할수록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긍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순간을 기록하는 일 역시 늘 좋은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 시작한 거고요. 즉 제 삶에서 멘탈웰니스는 순간의 기록을 통해 나를 사랑하게 되고 다른 이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주는 힘인 것 같네요.
앞으로의 계획?
저만의 시간을 가져보려고요. 일단 알바를 그만두고 음악에만 매진하면서 과연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 맞는지에 대해 확인해보고 싶어요. 물론 음악 말고 다른 것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음악적인 표현 외에 뭐 전시나 영상을 접목시켜서 꾸준히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음악적인 것 외에도 공부할 것이 굉장히 많다고 느끼거든요. 그게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순간을 기록하는 남자, 최정완의 연주를 더 듣고 싶다면?
youtube.com/Jeongwanchoi
Life Meets Life, LIFEPL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