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공 위에 인생을 얹어 던지다.
브래드 피트의 <머니볼> 이후, 어쩐지 야구라는 스포츠는 이 영화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수많은 팬덤이 고착됐지만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그다지 흥미가 없던 사람도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와 그가 연기한 대사들을 통해 야구의 진중한 멋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빌리 빈(브래드 피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아이들 게임에서 벗어날 때가 온다. 누구는 열여덟 살, 누구는 마흔 살에. 그러나 중요한 건 언제가 됐든 그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H2>에서 주인공들은 이미 고등학생의 나이에 그 첫 시기를 맛봤고, ‘삼미 슈퍼스타즈의’의 패전 처리 투수 감사용은 1980년대 OB 간판스타 박철순의 20연승 앞에서 그 시기를 맞는다.
그들이 상징적인 건 우리에게 과정의 아름다움을 메시지로 전하기 때문이다. 스코어보다 플레이 마디마디의 촘촘한 전략에 전율하고, 비록 지더라도 선수 개개인의 최선으로 빛날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이기 때문이다.
“서른다섯 살, 정말 꿈을 던지고 싶더라(<슈퍼스타 감사용> 리뷰 中).”던 어느 관객의 리뷰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축구처럼 역동적이지도, 농구처럼 스코어가 많이 나오지도 않는 야구에 열광할까. 아마도 야구만큼 많은 스토리를 가진 스포츠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심판마저 그 룰이 헷갈릴 만큼 규칙이 많아 그것 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고, 수많은 조직적, 유기적 플레이가 이어지는 반면 운과 타이밍에 허탈하게 좌우되기도 하며 그럼에도 그 과정이 주는 맛에 체념 보다 다음 경기를 기다리게 하는 마력이 야구에 있다. 몰라도 괜찮지만 알면 그 재미가 배가되는, 야구의 매력을 알 수 있게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본다.
야구의 규칙과 판례는 무척 다양한데, 홈런과 관련한 룰만 살펴봐도 경우의 수가 많다. 우선 수비수의 글러브를 맞고 넘어간 공은 웬만한 팬들은 알다시피 홈런. 그런데 관중이 글러브를 내밀어 타구를 잡았다면 글러브의 위치에 따라 홈런이나 인정 2루타로 판정된다. 그라운드에 튕긴 공이 담장을 넘어갈 경우도 인정 2루타. 분명히 홈런이겠다 싶은 볼이 운도 없이 날아가던 새에 맞고 떨어진다면 아쉽지만 떨어진 그대로 경기가 진행된다.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드물지만 만약 공이 쪼개져서 반은 홈런이고 반은 야수가 잡는다면 이건 홈런일까 아닐까? 정답은 공의 무게가 큰 쪽이 어느 쪽에 떨어졌는지 판단하면 된다.
야구 경기에는 규칙에 나와있지 않은 다양한 불문율이 존재한다. 홈런을 친 후 배트플립을 하거나 베이스를 천천히 도는 동작은 홈런을 맞은 투수를 자극하는 비매너 행위로 메이저리그에서는 금기시되어 있으나 KBO에서는 관대한 편이다. 또한, 수비수를 부상에 빠트릴 수 있는 과격한 슬라이딩을 한다면 그 선수는 곧 투수의 보복구가 날아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경기 후반 큰 점수차에서 이기고 있는 팀은 도루나 스퀴즈 등의 작전을 하는 것도 금기시된다.
벤치클리어링은 선수 간에 충돌이 발생했을 때 팀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말 그대로 벤치가 텅텅 비도록 팀원 전원이 출동하는 행위. 관중이 보기엔 때에 따라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지만 팀의 결속과 쳐져있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목적이 있다.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메이저리그에선 불참자에게 자체적인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고. 벤치클리어링은 보통 앙금이 쌓여있는 팀 간에 벌어지는데 그 원인을 놓고 팬들끼리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2016년 메이저리그의 토론토와 텍사스는 1년 전 바티스타가 홈런 후 배트플립(스윙 후 배트를 뒤로 꺾어 던지는 동작, 메이저리그에선 홈런을 맞은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로 해석된다.)을 한 것을 기억해 위협구로 보복했고, 이를 다시 바티스타가 위협적인 슬라이딩으로 보복하면서 역대급의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련 영상: MLB.com
http://m.mlb.com/video/topic/73497276/v702898683/?query=toronto%2Btexas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를 준비하고 감독과 코치들이 다양한 작전을 구상하는 사령부와 같은 공간, 평지보다 낮게 파여있어 더그아웃(Dugout)이라고 부른다. 더그아웃을 어느 쪽으로 정할지는 홈 구단의 자유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는 3루 코치가 감독과 마주 볼 수 있도록 대부분 1루에 더그아웃을 두는 경우가 많다. 타격을 하게 되는 경우 1루까지 갔다가 아웃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동선을 줄일 수도 있다. 현재 국내 10개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와 기아 타이거즈만이 3루 더그아웃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햇빛으로 인한 더위와 눈부심을 피하기 위함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넥센 히어로즈는 목동구장에서 3루 더그아웃을 사용했지만 고척돔으로 이사 오면서 1루로 변경했다. 일본 NPB리그에선 니혼햄 파이더스만이 3루 더그아웃을 홈으로 사용하는데 이유는 지하철 출구에서 가까워 홈팀 팬들이 자리잡기 편해서라고...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LA 엔젤스, 애리조나 다이아몬스백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이 3루를 홈으로 사용하고 있다.
1) 최단 경기 VS 최장 경기
평균 3시간 이상이 걸리는 야구경기. 1982년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는 그간 재미있는 기록을 남겼는데, 1985년 9월 21일 청보 핀토스 vs 롯데 자이언츠 전은 1시간 33분의 역대 최단 경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임호균, 장명부 두 선수가 완투했으며 결과는 롯데의 3:0 승리. 반대로 최장 기록은 2009년 5월 21일 LG 트윈스와 기아 타이거스의 경기에서 나왔다. 12회 연장까지 13:13 무승부로 끝난 이 경기는 5시간 58분이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연장 제한이 없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최장 경기 기록은 무려 8시간 6분!
2) 최다 득점 VS 최다 투구
KBO 한 팀 최다 점수는 1997년 5월 4일 삼성 라이온즈가 LG 트윈스를 이길 때 올린 27점. 양팀 최다 득점 경기는 2009년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 경기에서 나온 22:17로, 양팀이 합쳐 무려 39 득점을 만들어냈다. 한 타석 최다 투구 기록은 2010년 8월 29일로, 당시 기아 이용규가 넥센 박준수를 상대로 20개의 공을 던지게 한 것. 투수 최다 투구 기록은 역대 최고의 투수전으로 꼽히는 1987년 5월 16일 해태 vs 롯데 전으로, 선발투수 선동렬과 최동원이 각각 232개와 209개의 공을 던졌고 결과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3) 사이클링 히트와 사이클링 홈런
사이클링 히트는 한 경기에서 한 선수가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의 네 가지 안타를 모두 쳐내는 것을 말한다. KBO에서 역대 사이클링 히트는 모두 22차례로 에릭 테임즈는 2015년, 두 번의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보다 힘든 개인 사이클링 홈런은 한국과 미국, 일본의 1부 리그에선 아직 나온 적이 없는 기록. 하지만 기아 타이거즈는 2010년 7월 29일 롯데와의 경기 3회 초 공격 때 솔로홈런, 투런, 쓰리런, 만루홈런을 때려내며 한 이닝 팀 싸이클링 홈런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루에 단 한 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을 퍼펙트게임이라고 한다. KBO 리그에서는 아직 이 대기록이 나오지 않았지만 가장 근접했던 경기로 1997년 5월 23일 한화 이글스와 OB 베어스의 경기를 꼽을 수 있다. 한화의 레전드 정민철이 8회 1사 상황까지 퍼펙트 피칭을 했고 심정수에게 헛스윙 삼진을 잡았지만 공이 뒤로 빠지면서 낫아웃 출루를 허용하고 말았다. 크게 흔들릴 상황이었지만 정민철은 침착하게 타자를 모두 잡아내며 무사사구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서는 40살에 퍼펙트게임을 만들어낸 랜디 존슨 등 총 23번의 퍼펙트게임이 있었다.
“도전은 다 어렵지, 하지만 배우면 돼.” <머니볼>에서 ‘빌리 빈’은 도전 또한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 중 하나라고 한다. 도전을 통해 결과를 얻는다는 프로세스에 익숙한 우리에게 ‘도전을 배운다’는 말은 무의식을 깨우는 경종과도 같다. 인생이 고민과 선택의 연속인 것처럼 야구 또한 그 인생을 닮은 도전의 드라마인 셈이다. 야구 입문자거나 적어도 흥미를 갖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제 막 그 도전을 배우려는 제스처를 취한 셈이다.
TIP 야구를 책으로 배웠습니다
홈런과 안타밖에 모르는 야구 초보 팬이라면 김정란의 <야구 아는 여자>를 추천한다. 초보가 하나하나 야구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는 야구 ‘덕후’의 바이블로 불리는 책으로 표면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심오한 야구 전략들을 곱씹듯 배울 수 있다. 최훈의 카툰과 <야구친구>와 같은 SNS 채널은 KBO 리그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보 채널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