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적절함,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탁월한 능력

by 인생질문

언어의 온도

사우나에 가면 건식,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는 출입문 옆에 온도가 표기되어 있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그 온도를 보고 대략적인 사우나 방안의 환경을 유추할 수 있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차가운 물에 수건을 담가 들어가기도 하고 땀을 많이 흘릴 것 같은 온도이면 마른 수건을 가지고 땀을 준비를 하고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환경은 상황에 따른 온도를 가지고 있다. 부부 사이에 온도가 있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온도가 있으며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온도가 있고 유권자들과 유권자들 사이에도 온도는 존재한다. 이 모든 관계 속에서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가? 상황에 필요한 적절한 온도로 조절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몽골에 아웃리치를 갔을 때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다. 게르라는 텐트에서 잠을 잤는데 새벽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라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게르 텐트를 돌봐주는 몽골 분이 들어와 게르 텐트에 난로를 피워주셨고 장작을 쏟아부어 주셔서 덥게 아니 뜨겁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장작이 한꺼번에 타올라 너무 뜨거웠던 나머지 밖은 영하 20도였지만 나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땀을 흘리며 잠을 자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잠자다 천국 갈 뻔했다. 장작이 한 번에 타오르고 사그라들었고 새벽이 되자 게르 텐트는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너무 추워 얼어 죽을 것 같아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아침을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게르 텐트를 관리하던 몽골 분이 귀찮은 나머지 한꺼번에 장작을 모두 넣어서 생긴 문제였다. 원래는 한 시간마다 적당한 량의 장작을 넣어야 일정하게 온도가 유지되고 숙박을 할 수 있었는데 몽골 분이 귀찮은 나머지 한 번에 모두 때려 넣은 것이 사건의 원인이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나를 위한다고 말씀하시며 한 번에 장작 때려 넣으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장작 넣어주시기 귀찮아 한 번에 다 때려 넣으시며 나를 뜨겁게 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밤새도록 우리 곁에서 장작을 세어두시고 시간과 때에 따라 적절한 양의 장작을 넣어주시는 분이시다. 내 몸이 뜨거워 이불을 벗어던지면 잠시 양을 조절하여 온도를 낮추시고 내가 추워 몸을 움츠리고 있으면 장작을 더 넣어 몸을 풀어주시는 분이시다.

필요한 언어의 온도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을 위한 언어의 온도가 필요하다. 따뜻한 온도가 필요할 때 온도를 올려 따뜻하게 해줘야 하고 너무 뜨겁다면 온도를 내려 적절한 온도로 내려줘야 한다. 문제는 무엇인가? 부모 혹은 교사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착각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내 삶, 감정, 상태를 위한 언어의 온도를 조절하고 있나? 없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권면하는 것은 훈육이 아닌 방치에 가까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주인 되어 주신 후 나는 누구보다 언어의 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언제나 변함없이 가장 완벽한 언어의 온도로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하나님은 차분한 언어의 온도로 말씀해 주시며 소용돌이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신다. 무기력과 우울감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강력한 언어의 온도는 잠이 오지 않는 흥분으로 뜨겁게 내 삶을 달궈주신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항상 정확하다. 그리고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늘 완벽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언어의 온도는 늘 안전하다. 나의 온도를 가장 잘 아시며 생명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밤새도록 내 곁을 지켜주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가장 미련한 어른이 되는 길은 단순하다. 아이들의 언어 온도가 아닌 내 언어의 온도에 아이들이 맞추길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지금도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빠른 포기가 지혜이며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조건이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말하는 언어의 온도를 통해 아이들 삶에 현재를 보는 지혜로운 어른이 되길 소망한다. 아이들이 항상 쉽고 편하게 자신의 상태를 언어를 통해 보여주는 관계가 유지되길 기도한다. 때론 나의 언어의 온도와 꽤 많은 차이가 있어 불편함이 있더라도 어른인 내가 곧 하나님 말씀의 온도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 지금 필요한 언어의 온도가 몇 도에요?' 물으며 깨닫게 하시는 그 말씀, 언어의 온도로 아이들 인새의 온도를 조절하는 어른이 되길 기도한다. '그런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늙어가면 늙어갈수록 주변에 아이들이 더 많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 제게 늘 완벽한 언어의 온도를 통해 말씀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아이들에게 그런 교사, 어른, 목사가 되게 해주세요. 제가 느끼고 배우고 깨닫게 된 따뜻함과 사랑과 힘과 능력을 하나님 말씀의 온도를 통해 아이들도 경험하고 배우고 기억하고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사이자, 목사로 학교에서 20년 가까이

가르치고 읽고 쓰고 듣고 살아갑니다

프로질문러, 인생질문 작가 유찬호

biblestor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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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머리 게으른 일상이지만 최선을 다해 답을 해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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