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6 일상의 기적. 6장 일 속에 흐르는 살아있음
6장 일 속에 흐르는 살아있음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이라는 이름의 활동 속에서 보냅니다.
무언가를 만들고, 옮기고, 돕고,
생산하고, 계산하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묻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일이 정말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걸까?”
그 질문들은 진실합니다.
많은 일이 삶을 지탱하는 수단으로만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있음은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드러나고자 하는 생명성입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몰라도 울음과 웃음,
손짓으로 자신의 살아있음을 드러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말합니다.
“나는 살아있다.
지금 이 행위로 나의 살아있음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일은 본래 고통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일 속에서 자신을 잃거나,
그것을 오로지 생존을 위한 의무로만 여길 때
일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살아있음은 본래 흐름입니다.
그런데 흐름을 통제하려 하거나,
비교, 경쟁, 성과에 매몰될 때
존재의 흐름은 막히고, 일은 고통으로 굳어집니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일,
한 장의 문서를 정리하는 일,
한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
그 모든 행위가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자각을 품을 때,
더 이상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하나의 기도, 살아 있는 행위가 됩니다.
당신이 지금 하는 그 일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하거나,
지친 마음에 작은 숨 돌림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살아있음의 확장입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어떤 태도로 일하고 있는가?
이 일은 내 삶에서 어떤 흐름을 만들고 있는가?
나는 일하는 동안 ‘존재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단지 ‘기능하고’ 있었는가?
당신은 손끝과 눈빛, 말투 속에
사랑이 흐르고 있음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 사랑은 거창한 말이 아닙니다.
일상 속 작은 움직임으로도 충분히 흘러갑니다.
우리가 하는 평범한 일들 속에도
살아 있는 사랑이 깃들 수 있습니다.
일은 바뀌지 않아도 됩니다.
일을 대하는 태도만 바뀌면,
그 일은 전혀 다른 깊이를 갖습니다.
빨래를 갤 때,
‘나는 지금 존재와 함께 옷을 접고 있다’라고,
이메일을 보낼 때는,
‘나는 지금 살아있는 나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다’라고,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는
‘이 행위는 나의 존재가 깨어 있는 방식이다’라고
자각해 보세요.
그 순간, 일은 삶의 부담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움직임이 됩니다.
모든 일은 결국 나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그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곧 살아있음의 얼굴이 됩니다.
살아있음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어떤 존재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깨어 있음으로 일하고 있다면,
그 순간 당신은 살아있음의 통로로서,
사랑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자각해 보세요.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살고 있다.”
그때, 당신의 하루
노동이 아닌 기도, 의무가 아닌 기적이 됩니다.
오늘 하는 일 가운데 단 한 가지를 골라,
속으로 이렇게 자각하며 해보세요.
“나는 지금 이 일을 통해 살아있음을 살고 있다.”
그 순간, 그 일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기도이자, 살아있음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