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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Sep 12. 2024

강수연 배우

1966년 8월 18일 ~ 2022년 5월 7일

“저는 이 영결식이 끝나고 영원한 작별을 하는 대신 작업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새 영화 고민을 해야만 합니다.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2022년  5월 11일 진행된 고 강수연 배우의 영결식에서 연상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 배우의 유작이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의 연출자다. 〈정이〉는 SF영화다. 불모지가 된 22세기 디스토피아 지구가 배경이다. 인류는 피난처 쉘터를 만든다. 정작 인간은 쉘터에서조차 자멸적인 내전을 일으킨다. 〈정이〉에서 강수연 배우는 뇌복제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 서현을 연기했다. 서현은 전설의 용병이라고 불리는 슈퍼솔져 전투로봇 정이의 뇌를 복제하려고 시도한다.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열쇠기 때문이다.


〈정이〉 촬영은 마무리됐다.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SF영화인만큼 컴퓨터 그래픽 후반 작업이 길다. 넷플릭스를 통해 올해 2022년 안에 공개될 예정이다. 〈정이〉는 제작비만 200억원이 넘게 투자된 넷플릭스의 기대작이다. 연상호 감독은 역시 넷플릭스로 공개된 전작 〈지옥〉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연상호 감독은 차기작 〈정이〉를 구상하면서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강수연 배우를 염두에 뒀다. 전세계 180개국에서 공개될 한국SF영화 〈정이〉의 중심을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스타 강수연이 잡아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강수연은 세계 속의 한국 영화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평생 월드스타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냈던 대배우였다. 동시에 영화계가 충무로라는 작은 거리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지금처럼 글로벌 K한류의 중심 콘텐츠가 될 때까지 한국 영화 산업을 지탱해온 파운딩마더였다. 1966년생인 강수연 배우는 세 살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가 됐다. 초등학생 시절엔 〈번개돌이〉와 〈똘똘이의 모험〉 같은 어린이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다. 마치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걸음마를 떼고 말을 깨우치자마자 카메라 앞에 섰던 셈이다.


영화 데뷔작은 1976년 〈핏줄〉이었다. 한국 전쟁 시절 피난민으로 동고동락했던 두 친구가 검사와 밀수범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강수연 배우는 당대 최고의 스타 신성일과 연기했다.

강수연은 21세 때인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서 주인공 옥녀를 연기한다. 조선시대 종가집의 대를 잇기 위해 여성을 씨받이로 이용하는 유교 문화와 그런 시대에 사랑과 반항으로 저항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씨받이〉는 배우 강수연과 한국 영화에 대환전점이 된 영화다. 강수연 배우는 1987년 44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계로서도 아시아 영화계로서도 최초였다. 강수연은 세계 영화계가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때까지 한국 영화는 변방에 불과했다. 한국 영화인들도 한국 영화를 통칭해서 방화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방화란 지방 영화의 줄임말이다. 강수연 배우는 한국 영화 배우로서 최초로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섰다.


강수연 배우는 2년 뒤인 1989년 역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냉전 시대였단 당시엔 해도 모스크바 영화제는 칸과 베니스와 베를린과 함께 세계 4대 영화제로 불렸다. 강수연은 스님이 된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구니가 고등학생 순녀를 연기한다. 순녀의 비구니 생활은 속세와 연루되면서 파란을 맞이한다. 〈아제 아제 바라 아제〉의 순녀는 〈씨받이〉의 옥녀만큼이나 강렬한 인물이었다. 대중이 기억하는 스크린 속 강수연 배우의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는 이때 구축됐다. 평생 강수연 배우를 따라다녔던 월드스타 강수연이라는 이미지도 이때 완성됐다.


카리스마 있는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월드스타라는 상징성은 평생 강수연 배우가 짊어져야 했던 왕관이었다. 강수연 배우 스스로도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가 오히려 편하고 일상적 연기를 할 때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인터뷰 전문지 《인터뷰365》와의 인터뷰에서 강수연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원래 굴곡이 강한 격렬한 리듬의 행위를 보여 주는 캐릭터는 자신 있게 덤벼드는데 지난해 출연한 '문희'같이 그냥 멜로풍의 잔잔하고 일상적인 연기는 늘 힘들게 해요. 제가 실제 독한 여자는 아니지만 강한 배역이 몸에 맞고 편해요.”


실제로 강수연은 대중적으로도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이나 드라마 〈여인천하〉로 기억되는 배우다. 이건 할리우드 배우들만이 갖고 있는 카리스마다. 미래 세계나 우주 공간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는 존재감을 가진 배우가 있어야 영화적 상상력이 커질 수 있다. 강수연 배우의 유작 〈정이〉는 그런 면에서 가장 강수연다운 마지막 작품인 셈이다.


강수연 배우는 하나의 산업이 발전하고 세계화되기 위해선 반드시 시대를 앞서가는 S급 인재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강수연의 존재는 산업화되기 이전이었던 한국 영화 산업엔 벼락 같은 축복이었다. 영화계의 산업화를 위해선 흥행성과 국제성을 모두 지닌 배우가 절실했다. 베니스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강수연 덕분에 영화로 투자가 이뤄지고 극장에서 흥행이 가능했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영화는 사실상 강수연이라는 흥행 카드에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강수연 배우 본인이 이런 무게감을 잘 알고 있었다. 인터뷰 전문지 《인터뷰365》와의 인터뷰에서 강수연은 말했다.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하는 올가미 같은 거라구요. 그만한 책임감도 느껴야 하고 처신에도 제약을 받죠.”


그렇지만 강수연은 왕관의 무게를 기꺼이 견뎌낸 자였다. 오히려 자신이 짊어진 무게 이상의 책임을 견뎌내면서 영화 산업의 기둥이 됐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 황정민의 대사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원래 강수연 배우의 말버릇이다. 강수연 배우는 사비를 써가며 영화 스탭들의 밥값과 술값을 대면서 영화 현장을 지켰던 배우였다. 그때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말하곤 했다. 의리는 인간 강수연의 됨됨이를 상징하는 단어다. 강수연의 별명은 깡수연이었다. 영화계와 영화인을 위해서라면 손익과 물불도 가리지 않았다. 이른바 〈다이빙벨〉 사태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아서 헌신했다. 쉽지 않은 자리였지만 강수연은 노력했다.   


1998년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데뷔한 배우 설경구처럼 강수연을 사부로 기억하는 후배들이 무수한 이유다. 5월 11일 진행된 영결식에서 설경구는 이렇게 강수연을 추모했다. “영화를 함께 찍으면서 첫 인연이 됐고, 영화 경험이 없던 저를 잘 이끌어주셨다. 선배의 막내고 조수여서 기뻤다. 알려지지 않았던 저에게 영화를 계속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했다. 비록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에게 애정을 주신 걸로 알고 있다.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들에게 선배는 배우들의 스타였다. 선후배를 아우를 수 있는, 그게 어색하지 않은 거인같은 대장부였다.” 강수연은 한국 영화 산업이라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줬던 파운딩마더였다.


고 강수연 배우는 2022년 5월 5일 오후 5시 14분 경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도 쓰러졌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호송됐지만 뇌사 판정을 받았다. 5월 7일 오후 3시 경 별세했다. 향년 56세다. 강수연 배우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 일찍 부모가 이혼해서 어머니가 둘이었다. 키워진 어머니와도 낳아준 어머니와도 평생 친밀하게 지냈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강수연 배우 본인은 인터뷰 때마다 결혼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가장 어려워했다. 여성과 결혼을 연관시키던 옛 시대를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기력이 있는 한 배우를 하고 싶다”면서 “연기 잘 하는 할머니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곤 했다. 가장 강수연다운 대답이었다.


강수연 배우는 평생 스크린 속에서 살다 갔다. 3세에 스크린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56세에도 스크린 속에서 살다가 떠났다. 어쩌면 강수연 배우에게 진짜 인생은 스크린 밖에 아니라 스크린 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이 말한 것처럼, 배우 강수연의 이야기는 영원히 현재진행형이다. 〈정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강수연이 남긴 40여편의 영화들을 지금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다만 영원히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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