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닥터 픽사 CCO는 그때 인사이드 아웃2 만이 살 길인 걸 알았다.
인사이드 아웃2의 흥행 돌풍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미국에선 개봉 첫 주말에만 1억55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2023년 7월 개봉했던 바비 이후 1억 달러 이상 오프닝 흥행을 기록한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2가 유일하다. 인사이드 바비 아웃이다.
인사이드 아웃2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영화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부터 니모를 찾아서까지 한손엔 오스카에 다른 손엔 흥행대박을 모두 쥔 성공작들이 즐비한 애니메이션 명가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2 직전까지만 해도 픽사에는 불안이만 가득했다. 픽사의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인 피트 닥터가 “인사이드 아웃2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픽사는 비즈니스를 급진적으로 다시 재고해봤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피트 닥터는 2015년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했던 감독이다. 9년이 지난 2024년 현재는 픽사의 CCO로서 픽사 콘텐츠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피트 닥터의 얘기처럼 픽사는 인사이드 아웃2 이전까지만 해도 기다긴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암흑기의 시작은 2020년 개봉한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이었다. 온워드는 1995년 픽사가 1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선보인 이후 최악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 2021년 개봉한 루카의 흥행 성적은 온워드보다도 더 나빴다. 바닥 아래 지하실이 있었다. 2022년 개봉한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은 지하 2층이었다.
2023년 개봉한 엘리멘탈은 지하 3층이었다. 엘리멘탈은 한국 시장에선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정작 주력 시장엔 북미에선 개봉 첫 주에 2950만 달러 밖에 못 벌었다. 픽사 역사상 최악의 오프닝 성적이었다. 반면 2022년 개봉한 버즈 라이트 이어의 흥행 성적은 그나마 지상 1층 정도는 됐다. 문제는 버즈 라이트 이어가 전설적인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스핀 오프였다는 점이었다. 토이 스토리의 간판을 달고 전세계에서 2억2600만 달러 밖에 못 벌었던 것이다. 2020년 개봉한 토이 스토리4는 11억 달러를 벌었다. 4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암흑기는 픽사의 간판 감독이자 CCO였던 존 라세터가 2018년 픽사를 떠나면서 시작됐다. 존 라세터는 사내 성희롱과 성추행 혐의로 불명예 퇴진했다. 존 라세터는 픽사의 공동창업자이자 토이 스토리1과 토이 스토리2의 감독이다. 2018년 당시 토이 스토리4 연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존 라세터는 토이 스토리4 감독직도 내려놓는다. 존 라세터를 시작으로 픽사의 리더쉽은 하나 둘 붕괴되기 시작한다.
2018년 10월엔 존 라세터와 픽사의 양대 기둥이었던 애드 캣멀 CEO가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1986년 픽사를 공동창업한지 32년 만이었다. 픽사는 스티브 잡스와 애드 캣멀과 존 라세터 3인방에 의해 탄생했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존 라세터는 2018년 픽사에서 쫓겨났다. 이젠 애드 캣멀이 떠날 차례였다.
토이 스토리2의 조감독이자 토이 스토리3의 감독인 리 언크리치도 2019년 1월 은퇴를 선언한다. 사실 토이 스토리2는 실패할 뻔한 프로젝트였다. 원래 연출을 맡았던 공동감독 2인은 해임됐다. 산으로 가는 프로젝트를 되살리기 위해 1편의 감독이었던 존 라세터가 투입됐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개봉까지 9개월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리 언 크리치가 존 라세터를 보좌하지 않았다면 토이 스토리2는 완성이 불가능했다. 리 언크리치는 2010년 토이 스토리3의 감독을 맡았고 픽사 역사상 처음으로 흥행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한다.
리 언크리치에 이어 브래드 버드도 2019년 픽사를 떠났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 벅스라이프, 토이 스토리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까지 5편 연속 흥행성공이라는 신화를 썼다. 존 라세터 CCO는 스스로 성공을 자기 복제하는 성공의 덫을 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칼아츠 75학번 동기인 브래드 버드를 용병 감독으로 스카우트한다. 브래드 버드는 2004년 인크레더블과 2007년 라따뚜이로 픽사를 대표하는 흥행 감독이 된다. 브래드 버드는 현재 스카이댄스 애니메이션에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스카이댄스 애니메이션의 CEO는 픽사에서 내쫓긴 존 라세터다.
2009년 66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존 라세터와 리 언크리치와 브래드 버드 그리고 몬스터 주식회사를 만든 피트 닥터와 니모를 찾아서를 만든 앤드루 스탠튼은 명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들이 픽사 특유의 콘텐츠 교차검증 시스템인 브레인트러스트의 초기 멤버 5인방이다. 브레인트러스트는 30명 전후의 인력이 모여서 제작 중인 작품의 문제를 진단하는 방식이다. 토이 스토리1부터 잉태돼서 토이 스토리2부터 브레인트러스트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함께 콘텐츠의 문제를 진단하지만 해결책은 감독과 제작진에게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작품은 비평하지만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 솔직함을 기반으로 했다. 그런데 2019년을 기점으로 브레인트러스트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대부분 픽사를 떠나게 된 것이었다. 이제 픽사는 브레인트러스트를 진정 기업 문화로 제대로 정착시켰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픽사는 이어달리기에 실패했다. 2020년부터 시작된 5년 가까운 암흑기는 픽사 내부에서 작품을 상호검증하는 브레인트러스트 시스템이 약화됐다는 얘기였다. 2019년부터 존 라세터의 후임으로 피트 닥터가 픽사를 이끌기 시작했다. 피트 닥터는 픽사의 3호 애니메이터다. 막내 시절 피트 닥터한테 처음 주어진 일이 트라이덴터 껌의 광고 애니메이션 작업이었다.
당시 픽사는 광고 외주로 먹고 살던 스타트업이었다. 인사이드 아웃과 인사이드 아웃2에서 주인공 라일리의 머리 속에서 툭하면 소환되는 트리플덴트 껌 광고 관련 추억은 다름 아니라 피트 닥터의 기억이다. 피트 닥터는 이때부터 34년 동안 픽사에서 일하고 있다.
피트 닥터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피트 닥터한텐 1남 1녀가 있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큰 아들 니콜라스 닥터가 태어나던 무렵 연출했다. 인사이드 아웃은 피트 닥터의 작은 딸 앨리 닥터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제작됐다.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라일리처럼 피트 닥터 역시 미네소타 출신이다.
피트 닥터는 픽사의 후배 애니메이터들도 자신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온워드의 감독 댄 스캔론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온워드는 죽은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는 형제의 이야기다.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은 교육열이 넘치는 중국계 이민 1세대 엄마와 아이돌 콘서트를 가겠다며 반항하는 중국계 이민 2세 딸의 이야기다.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을 연출한 도미 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엘리멘탈은 한국계 이민 2세대인 피터 손 감독이 연출했다. 엘리멘탈에서 여주인공 엠버가 아빠를 부르는 아슈파는 한국어 아빠에서 나온 말이다.
정작 운워드와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과 엘리멜탄은 전세계 시장에서 대중적 공감을 일으키는데 실패했다. 엘리멘탈은 한국에서만 유독 흥행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일기는 타자기로 시나리오로 만들 게 아니라 연필로 일기장에 써야 했다. 몬스터 주식회사와 인사이드 아웃이 보편적인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브레인트러스트의 세밀한 변압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리지널 5인방의 역할이 컸다. 바꿔 말하면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공감으로 승화하는 픽사의 마법이 실종된 것이었다.
오리지널 브레인트러스트는 관객의 입장에서 콘텐츠를 진단했다. 더 많은 관객이 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지, 어린이 관객이 이런 어려운 설정을 이해할 수 있는지, 제작진은 중요하다고 느끼는 설명이 관객 입장에선 지루하진 않은지를 진단했다. 피트 닥터의 픽사는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며 실제로 중요한 것을 강조했지만 막상 극장에 온 관객들 입장에서도 보고 싶은지 중요한지까지는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
피트 닥터는 암흑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픽사의 지난 5년을 통째로 반성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제대로 망쳐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피트 닥터는 수석 부사장 린지 콜린스를 통해 속편과 스핀오프의 시장성을 검증하기 시작한다. 린지 콜린스는 1997년부터 픽사의 프로듀서로서 일하면서 토이 스토리와 니모를 찾아서로 이어지는 황금기를 경험했다. 황금기에서 암흑기의 탈출구를 찾으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속편 라인업으로 올라온 작품이 인사이드 아웃2와 토이 스토리5였다.
속편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흔히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복붙만 하면 캐릭터를 재활용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솔직히 토이 스토리2를 만들 때 픽사도 그렇게 착각했다. 그래서 신인 감독 2명의 1년 이상 시간을 낭비하다 하차해야만 했다. 속편은 오히려 전편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시작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크다. 스토리보드 역시 거의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만 한다. 그렇지만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길을 잃은 피트 닥터한테 속편은 마지막 승부처였다.
사실 픽사한텐 속편 제작의 선택지조차 많지 않았다. 속편의 연출을 맡기거나 적어도 속편 연출자의 멘토 역할을 해줄 전편의 연출자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이 스토리의 존 라세터는 픽사를 떠났다. 엔크레더블의 브래드 버드도 존 라세터한테 갔다. 리 언크리치는 은퇴했고 니모를 찾아서의 앤드류 스탠튼은 슬럼프였다.
피트 닥터 CCO가 신인 감독인 켈시 만을 도와줄 수 있는 IP는 인사이드 아웃2였던 것이다. 피트 닥터는 픽사 역사상 가장 많은 150명이 넘는 애니메이터를 인사이드 아웃2에 몰빵한다. 원래 2024년 6월 개봉 예정이었던 오지지널 스토리인 엘리오 대신 인사이드 아웃2의 개봉 일정을 앞당긴다. 마지막 승부였다.
픽사는 2024년 5월 21일 전체 직원의 14%인 175명을 해고한다. 솔직히 이 무렵 픽사는 인사이드 아웃2의 대박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량 해고를 한 건 노선 변경을 위해서였다. 해고된 직원 대부분은 디즈니 플러스 스트리밍과 관련한 부서 소속이다.
픽사는 모회사 디즈니로부터 극장용보단 스트리미용 영화에 집중하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픽사는 디즈니 플러스에 집중하는 디즈니의 전략에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 피트 닥터는 루카와 온워드가 디즈니 플러스 직행을 강요 받자 죽을 것처럼 괴로웠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이제 피트 닥터는 인사이드 아웃2는 극장 개봉 이후 100일 동안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상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놓고 디즈니 플러스는 픽사한텐 마이너스라고 공식화한 것이다.
이렇게 픽사가 자기 목소리를 낸 것도 거의 4년 만이다. 사실 2020년 2월 밥 채팩 CEO가 디즈니를 이끌게 되면서 픽사는 디즈니의 압력이 시달렸다. 밥 채팩은 비용절감과 수익극대화에만 골몰하는 CEO였다. 디즈니 테마파크 출신인 밥 채팩은 콘텐츠를 몰랐다. 픽사한텐 최악의 모회사 CEO였다.
결국 2022년 11월 밥 채팩이 해임되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던 밥 아이거가 복귀하면서 픽사도 기지개를 켰다. 밥 아이거는 스티브 잡스와의 빅딜로 2006년 픽사를 인수한 장본인이다. 밥 아이거 체제에서 픽사는 다시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인사이드 아웃2의 대박 흥행에도 불구하고 피트 닥터는 욕을 먹고 있다. 지난 5월 30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때문이다. “픽사의 영화들은 감독 개인의 카타르시스 추구가 아니라 보통의 공통적인 경험에 호소해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자적전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보편적 대중성을 잃었던 픽사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러자 피트 닥터가 픽사의 오지지널 창의력을 죽이고 속편에 매달리려고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픽사는 인사이드 아웃2에 이어 토이 스토리5를 제작할 계획이다.
솔직히 픽사는 이제 겨우 겨우 암흑기에서 탈출했다. 다시 연패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승리의 기억이 절실하다. 과거 픽사가 강했던 건 성공방정식을 알고 성공의 기억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픽사에는 그런 성공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줄었다. 그래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인사이드 아웃2의 성공으로 픽사는 겨우 흥행의 맛을 다시 봤다. 그 핵심 기억이 기억저장소에 저장되고 새로운 자아가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토이 스토리가 만든 자아를 대신할 인사이드 아웃의 자아다.
온라인 인물 도서관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중소기업뉴스에 기고했던 칼럼의 원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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