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는 그때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900억 원.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의 성과급이다. 네이버웹툰의 미국 법인이자 본사인 웹툰엔터테인먼트는 2024년 6월 27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상장 첫 날에만 9% 넘게 급등하면서 주당 23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상장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상장 이후엔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도 주당 21달러의 공모 가격을 지켜내고 있다. 게다가 상장 이후 주가 변동은 병가지 상사다. 중요한 건 웹툰엔터테인먼트가 시장에 일단 소프트랜딩했다는 사실이다. 웹툰엔터테인먼트의 종목 코드는 WBTN이다. 이번 기업 공개로 1500만 주의 신주를 발행했다. 시가총액은 26억 달러를 안팎을 오간다. 한화로는 3조7000억 원 정도다. 김준구 대표는 20년 만에 0원 짜리 회사를 3조7000억 원 짜리 회사로 만들었다. 김준구 대표 본인은 900억 원의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됐다.
일단 김준구 대표는 2024년 7월 중에 3000만 달러의 현금 보너스를 받는다. 한화로 420억 원 정도다. 479억 원 어치의 스톡옵션도 부여 받았다. 여기에 2024년 5월엔 양조제한조건부 주식인 1만4815주도 부여 받았다. 이걸 다 더하면 900억 원에 육박한다. 김준구 대표는 2004년 네이버에 개발자로 입사했다. 2004년 네이버가 만화 서비스를 기획하자 손을 번쩍 들고 자원했다. 20년 만에 아무것도 없는 회사를 뉴욕 증시에 상장시켰고 본인은 900억 원 자산가가 됐다. 만화 같은 일이다.
김준구 대표는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분자생물학과 97학번이다. 한 마디로 컴퓨터 코딩과는 아주 거리가 먼 공대생이다. 김준구 대표는 학부 때 우연히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전공 공부보단 코딩 실력을 살려서 27세 때인 2004년 당시엔 이름이 NHN이었던 네이버에 개발자로 입사했다. 당시 네이버는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대표의 한게임과 합병해서 네이버와 한게임 네트워크가 돼 있었다. 당시 네이버는 지금처럼 시장 독점적인 검색 사업자가 아니었다. 다음과 야후코리아와 치열한 시장 점유율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용자를 네이버 검색 엔진에 가둬놓기 위한 록인 전략이 콘텐츠였다. 한게임과의 합병으로 게임 콘텐츠를 확보했다. 지식인으로 텍스트 콘텐츠를 확보했다. 이제 콘텐츠 경쟁은 새로운 콘텐츠인 만화로 옮겨붙고 있었다.
선발주자는 강풀 작가를 앞세운 다음 웹툰이었다. 여기에 파란과 야후코리아의 카툰 세상이 가세했다. 독립 만화 플랫폼으론 디시인사이드 카툰 갤러리가 있었다. 후발 주자인 네이버는 내세울 만한 작가가 없어서 출판 만화를 스캔해서 올리던 실정이었다. 솔직히 네이버 안에서 만화는 개발자들이 기피하는 변두리에 불과했다. 신입사원 김준구가 네이버 만화 서비스에 지원한 건 만화가 개인 취향이라서였다. 김준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사모았다. 평생 모은 만화가 1만 권이 넘었다. 1종류 만화에 3질씩 사들일 정도였다. 소장용, 대여용, 독서용이었다. 그만큼 만화덕후였던 탓에 개발자들은 기피하는 만화 부서에 기꺼이 지원할 수 있었다.
2005년 서비스 개발을 해서 2006년 서비스 런칭을 할 즈음이 되자 중요한 건 역시 기획이었다. 다음 웹툰은 드라마물이 강했다. 파란은 판타지물이 강했다. 2006년 다음 웹툰에서 강풀의 순정만화가 터졌고 파란에선 양영순 작가의 천일야화가 대박이 났다. 도무지 네이버 웹툰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김준구는 네이버 웹툰의 컨셉트를 개그와 공감으로 잡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만화 작가들이 없었다. 김준구는 직접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작가가 조석 작가와 기안84였다.
김준구 대표는 1980년대 드래곤 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를 발굴한 소년 점프의 전설적인 만화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와 같은 역할을 한 셈이었다. 1980년대는 일본 경제의 평균 성장률이 4%를 유지하고 있던 문화적 황금기였다. 이른바 쇼와 호황이었다. 이때 만화 산업도 꽃피웠다. 나고야 시 출신으로 공고를 졸업하고 백수로 놀던 토리야마 아키라를 발탁해서 만화가로 만든 건 토리시마 카즈히코였다.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1년 이상 토리야마 아키라의 원고 500페이지 분량을 폐기했다. 결국 1981년 닥터 슬럼프가 초대박이 났다. 이때 닥터 슬럼프가 바로 김준구 대표가 네이버 웹툰에서 추구했던 개그와 공감의 일상 웹툰이었다.
조석 작가는 2006년 9월부터 마음의 소리를 네이버웹툰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당시 원고료는 주2회 연재에 월 20만 원이었다. 조석 작가한테 김준구 대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 마감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도록 쪼고 또 쪼아댔기 때문이다. 사실 김준구 대리는 네이버 웹툰에 요일제 연재 시스템을 적용한 장본인이다. 그때까지 만화 유통은 작가의 일정에 독자가 기다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마감을 정하는 일도 마감을 지키는 일도 잘 없었다. 김준구 대리는 네이버 웹툰에 마감 요일제를 적용해서 소비의 습관화를 만들었다. 이런 소비의 습관화는 소비의 유료화의 전제 조건이었다. 만화를 돈 주고 본다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선 만화를 약속한 시간에 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그 본보기가 조석 작가였던 셈이다. 개그와 일상이라는 소재와 화목 연재라는 패턴까지 조석은 네이버 웹툰의 마음의 소리였던 셈이다.
김준구 대리는 신규 웹툰 기획을 할 때 시장이 어떤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가를 한 눈에 알기 위해 라인업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라인업 매트릭스 엑섹 파일을 기반으로 성별, 연령대, 소재라는 3가지 축으로 시장 세그먼트를 분류해서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신작을 기획했다. 그렇게 탄생한 만화가 김규삼 작가의 입시명분사립 정글고등학교와 기안84의 패션왕이었다. 김규삼 작가는 당시 만화를 포기하고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준구 대리는 몬스터즈를 보고 김규삼 작가를 찾아냈다. 학원물인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를 기획했다.
기안84는 2008년 디시인사이드 카툰 연재 갤러리에 노병가를 연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기안84는 의무경찰로 군생활을 했다. 노병가는 의견 기동대 생활을 그린 군대물이었다. 기안84는 2009년 야후코리아 카툰세상에 노병가를 본격 연재했다. 2010년엔 기안84 단편선을 야후코리아 카툰세상에 선보였다. 밑바닥 현실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기안84 단편선 덕분에 기안84는 웹툰계의 홍상수로 불리게 됐다. 그렇지만 기안84한테 떨어지는 돈은 얼마 없었다. 디시인사이드도 야후 카툰세상도 큰 물이 아니었다.
기안84를 네이버웹툰이라는 큰 물로 끌어들인 것도 김준구 대리였다. 기안84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네이버웹툰에 패션왕을 연재한다. 패션왕은 기안84 단편선의 에피소드를 확장한 것이었다. 당시 기안84는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방을 같이 썼던 또 다른 웹툰 작가 이말년이 결혼하면서 혼자 남게 됐다. 기안84의 패션왕은 네이버웹툰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와 기안84 작가의 패션왕을 통해 네이버웹툰은 계단식으로 성장하게 됐다.
김준구 대리는 2013년 콘텐츠 유료 판매 수익과 광고 수익과 지식 재산권을 묶어서 창작자 수익을 다각화하는 모델인 Page Profit Share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플랫폼을 통해 생태계를 형성하려면 무엇보다 창작자들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전략을 김준구 대리는 웹툰 시장에 적용한 것이었다. 김준구 대리는 PPS를 토대로 웹툰 작가가 굿즈, 단행본, 영상화, 게임 등으로 IP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현재 네이버웹툰은 웹툰 작가에게 21개의 부가 수익 모델을 제공한다.
여기서 역설은 작가는 점점 더 돈을 벌어도 김준구 대리를 비롯한 네이버웹툰 담당자들은 그저 월급쟁이라는 사실이다. 김준구와 네이버웹툰 팀원들은 작가들 마감 일정을 지켜서 소비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 3시간 씩 자면서 일했다. 결국 회사와 작가 좋은 일들이었다. 이때 김준구 대표의 동기는 만화에 대한 애정 그 자체였다. 플랫폼을 통해 시장을 만드는 사람이 반드시 제일 큰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 스타야 말로 가장 큰 돈을 벌게 마련이다. 유튜브 플랫폼에서도 유튜브 엄마라고 불리는 수잔 워치츠키보다 구독자 3억 명의 미스터 비스트가 더 큰 돈을 벌고 있다.
그래서 김준구 대표는 2013년부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기 시작했다. 2013년 기준 국내 시장은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었다. 그 단적인 예가 만화 작가들이 김준구 대표를 마감 귀신 밈처럼 묘사하고 그걸 소비자들이 즐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밈이 등장했다는 것은 독립적인 시장이 생겼고 독자적인 문화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조석 작가는 마음의 소리에서 종종 김준구 대표를 김대리나 김이사로 묘사했다. 기안84는 김준구를 마감 쪼는 악마이자 천적으로 묘사했다. 김준구 대표는 마감을 못 지키는 작가들을 위해 통조림 전략까지 썼다. 네이버 오피스에 작가들을 가둬놓고 마감을 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시스템이 구축되자 눈을 돌린 곳이 해외 시장이었다.
김준구 대표는 2013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해외 진출 테스크포스를 꾸렸다. 김준구가 팀장이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팀원이었다. 정확하게 10년 전인 2014년 김준구는 미국 시장에 도전한다는 의미로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에서 김대리의 머리 색이 금발로 변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2014년 네이버웹툰은 영어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2014년 김준구의 정확한 직함은 네이버 웹툰&웹소설 사업부문 셀장이었다. 2014년 김준구 셀장은 포브스가 선정하는 가장 혁신적인 차세대 리더 12인에 선정됐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2013년 기준 네이버웹툰에서 연간 거래량이 1억 원을 돌파한 웹툰은 1편 뿐이었다. 네이버웹툰을 통해 작가들이 거둬들이는 수익의 총합도 232억 원 정도였다. 2004년 처음 웹툰 시장을 만들어서 10년 만에 232억 원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10년 뒤엔 더 큰 시장을 바라봐야만 했다. 국내 웹툰 시장이 레드 오션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가는 작은 시장을 쪼개 먹는 형국이 될 수도 있었다.
네이버는 네이버웹툰을 2015년 사내독립기업으로 승격시켰다. 2017년엔 아예 네이버로부터 분리돼서 자회사가 됐다. 이때마다 원래 대리였던 김준구의 직함은 셀장이었다가 이사였다가 대표였다가로 수직 상승했다. 2020년엔 네이버웹툰의 미국 법인이자 본사인 웹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이젠 직함이 대표에서 CEO가 된 셈이었다. 그렇지만 김준구 대표의 방향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웹툰웹소설의 디즈니가 되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서 캐다나의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했다.
웹툰의 디즈니라는 컨셉트는 웹툰엔터테인먼트의 비전이다. 디즈니는 산하에 픽사와 마블과 루카스필름과 20세기 폭스를 거느린 텐트폴 콘텐츠 플랫폼이다. 다양한 콘텐츠 파이프 라인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유통 경로 역시 극장부터 스트리밍까지 망라한다. 2차와 3차 콘텐츠를 넘어서 결국엔 테마파크에서 굿즈까지 공급한다. 디즈니는 캐릭터 콘텐츠의 모든 벨류 체인을 장악하고 있다. 네이버웹툰도 가능하다. 만화 캐릭터를 기반한다는 점에서 디즈니와 닮았으면서 동시에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선 유튜브와 닮았다. 결국 IP를 통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선 디즈니 테마파크와 닮아 있다. 디지털이라는 점에선 디즈니 플러스와 닮아 있다.
2024년 1분기 기준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플랫폼 월간활성이용자는 1억7000만 명이다. 전세계 120개국에 진출해 있다. 네이버웹툰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수는 2400만 명에 달한다. 콘텐츠의 숫자는 5500만 개를 넘어섰다. 이미 글로벌 플랫폼으로 위상을 굳혔다는 얘기다. 여기에 IP의 이삼차 개발도 활발하다. 100편 이상이 이미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70편이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굿즈는 1100만 개에 달한다.
상장 이후 김준구 대표의 숙제는 결국 2가지다. 아직 북미와 일본 시장에서 네이버웹툰은 구독 매출이 아니라 광고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유료 결제 비중은 54만 명 수준이다. 글로벌 평균인 800만 명에 한참 못 미친다. 그래서 네이버웹툰은 2023년 201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북미 시장에서 웹툰의 유료 결제 비중을 높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또 다른 숙제는 인공지능의 활용이다. 이미 웹툰 시장에서 AI의 역할을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어느 정도까지 활용해야 기존 작가들의 수익을 극대화하면서도 신규 작가들의 등장을 활성화시킬지 황금 비율을 찾아내야만 한다. 과하면 창작은 사라지고 모방만 남는다. 부족하면 수익률이 줄어들고 시장이 메마른다. 김준구 대표는 이미 2019년 AI 스타트업 비닷두를 인수했다. 개발자인 김준구 대표만큼 웹툰 시장에서 AI를 잘 이해할 사람도 없다.
김준구 대표는 2004년 네이버 만화 서비스에 자원하면서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가난한 한국 만화 작가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준다. 웹툰 작가 중 가장 돈 많이 벌고 가장 유명한 기안84는 이번 부산모터쇼에 대당 30억 원 짜리 부가티 시론을 패션왕으로 채색한 아트카를 선보였다. 김준구 대표의 목표가 이뤄졌다는 명백한 증거다. 둘째는 웹툰 플랫폼을 기업화시킨다. 네이버웹툰의 미국 상장으로 목표를 이뤘다. 셋째는 만화를 안 보던 사람들이 만화를 보게 만든다. 월간 1억 7000만 명이 웹툰을 보는 세상이 됐다. 3가지 목표를 이루는데 20년이 걸렸다. 900억 원을 받았다.
온라인 인물 도서관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중소기업뉴스에 기고했던 칼럼의 원본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