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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Sep 17. 2024

홍명보의 순간 : 과정

홍명보 축구감독은 그때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오판했다. 

“두려움이 컸지만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를 버렸다. 이제 나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 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2024년 7월 10일 울산에서 열린 울산HD와 광주FC의 K리그 경기가 끝난 직후였다. 홍명보 감독은 7월 8일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대다수 축구팬들한텐 의외의 결론이었다. 울산HD 팬들한텐 실망스런 결론이었다. 대다수 축구팬들은 외국인 감독 선임을 기대하고 있었다. 울산HD 팬들은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에는 관심이 없다는 홍명보 감독의 말을 믿었다. 7월 10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엔 “피노키홍”이라는 플랭카드가 내걸렸다. 


대한축구협회를 둘러싼 내홍도 점입가경이었다.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참여한 박주호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은 “외국인 감독을 설명하면 이건 안 좋고 저건 안 좋고라고 말했지만 국내 감독은 무조건 다 좋다고 답했다”고 폭로했다. 홍명보 감독은 나는 나를 버렸다고 말했지만 홍명보호는 출항하기도 전에 팬들에게 버림 받게 생겼다. 대한축구협회의 축구국가대표팀 선임 과정이 매끄러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까지 난맥상을 노출한 경우는 드물었다. 


2024년 2월 20일 대한축구협회는 차기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위해 전력강화위원회를 구성했다. 정해성 위원장을 임명했다. 사실 대한축구협회에는 미하엘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이 있었다. 2018년 김판곤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회의 김판곤 위원장과 함께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했던 장본인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김판곤과 마이클 뮐러가 주도한 파울루 벤투의 감독 선임 과정도 그때까지 가장 무난했던 외국인 감독 선임 과정이었다. 당연히 축구팬들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책임질 이번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도 파울루 벤투 프로세스처럼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김판곤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일단 2월 27일 황선홍 U23 대표팀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 대행으로 선임하는 선택을 했다.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게 월드컵 대표팀 감독직을 맡긴 것이다. 국가대표팀을 A대표팀과 U23대표팀과 U20대표팀으로 나눠서 운영하는 것은 선진 축구의 추세다. 월드컵과 올림픽과 20세 이하 월드컵은 성격이 전혀 다른 무대다. 국군이 전장에 따라 육해공군으로 편재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해군 사령관한테 지상 전투 지휘를 맡긴 것이었다. 전력강화위원회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다수결로 황선홍 감독의 A대표팀 임시 감독 대행 선임을 결정했다. 


위원회 체제의 장점은 표결이 아니라 토론이다. 탑다운식 결정의 리스크를 줄이고 다양한 시각을 고려한 바텀업식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위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견을 수렴해서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위원장이 CEO처럼 결정을 내리려고 하면 위원회는 무력화된다. 황선홍 감독 대행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은 지난 3월 21 서울에서 열린 태국 1차전에서 1대1로 비겼다. 한 수 아래 태국한테 무승부를 허용한 것이다. 닷새 뒤인 지난 3월 26일 방콕에서 열린 태국 2차전에선 3대0으로 겨우 설욕했지만 홈그라운드 무승부의 후유증은 컸다. 진짜 문제는 U23대표팀이었다. 지난 4월 2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황선홍 감독의 U23대표팀은 인도네시아한테 패배한다.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에 실패해버린 것이다. 40년 만에 온 국민이 축구가 없는 올림픽을 보게 된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황선홍 감독을 유력한 A대표팀 감독 후보로 고려하고 있었다. 모두가 외국인 감독을 원할 때 대한축구협회만 한국인 감독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전임자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탓이 있었다. 2023년 A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위르겐 클린스만은 적어도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최고의 선수가 최악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위르겐 클린스만은 3가지가 없었다. 전술이 없었고 의욕도 없었고 심지어 한국에도 거의 없없다. 자택인 캘리포니아에서 원격으로 지휘하는 국대 감독은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기 어려웠다. 


위르겐 클린스만은 코치진까지 포함해서 100억 원에 달하는 위약금이라는 부담을 대한축구협회에 남겼다. 가뜩이나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외국인 감독들한텐 리스크가 큰 자리다. 축구팬들은 항상 월드컵 16강 이상을 원하지만 상대적 경쟁력은 월드컵 16강만 들어도 선방인 레벨이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에 재택 근무라는 당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런 당근을 악용하면서 이젠 자금력이라는 핸디캡까지 생긴 것이다. 


진짜 문제는 위르겐 클린스만의 선임 과정도 결국 김판곤 체제 이후에 생겨난 난맥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선임은 사실상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탑다운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정몽규 회장은 2017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현장에서 위르겐 클리스만 감독은 정몽규 회장에게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나?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해본 말이다. 그래도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 사실상 감독직 플러팅을 했던 셈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23년 1월부터 미하엘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을 중심으로 차기 감독 선임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어차피 위르겐 클리스만이었다. 다시 주먹구구식 탑다운 축구 행정으로 돌아간 것이다. 


정작 대한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을 잘못 진단했다. 선임 과정이 잘못됐는데 외국인 감독이라는 결과가 잘못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그래도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2024년 5월부턴 해외 감독들과 협상을 시작한다. 황선홍 카드가 실패한 상황에서 축구팬들의 원성을 감당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시 마치 감독이 물망에 올랐다. 미국 국가 대표팀 수석 코치였고 미국 리그 경험이 많았다. 2026년 월드컵 주무대가 미국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전략적 선택이었다. 제시 마치도 위르겐 클린스만처럼 한국에 상주하는건 원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대한축구협회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5월 14일 캐나다 축구협회가 제시 마치를 가로채고 말았다. 


다음 선택지는 헤수스 카스스 현직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정작 이라크 축구국가협회장이 직접 대한축구협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환승감독이란 문제제기였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에르베 르나르 감독한텐 문전박대를 당했다. 에르베 르나르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아르헨티나를 격파한 장본인이다. 에르베 르나르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엔 별 관심이 없었다. 거꾸로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세올 귀네슈 감독은 마다했다. 세올 귀네슈 감독은 FC서울 감독을 맡았어서 한국 축구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2021년까지 튀르키예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했었어서 A매치 경험도 있었다. 5월 20일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세올 귀네슈 감독의 거절한다. 


그래놓고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다시 김도훈 감독이라는 한국인 감독 카드를 꺼낸다. 황선홍 감독 때처럼 김도훈 임시 감독으로 6월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김도훈 임시 감독은 싱가포르전과 중국전에서 승리했지만 축구팬들의 기대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한 수 아래 싱가포르전과 중국전에서 이겼다고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의 필요충분 조건이 충족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6월 12일 12명으로 후보를 압축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해임한 2월 15일부터 무려 118일 만이었다. 과거 국대 감독 선임에 걸긴 기간이 40일 남짓이었던 걸 고려하면 분명 선택 장애 상태였다. 리스트에는 그레이멈 아놀드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도 있었고 펠릭스 산체스 바스 에콰도르 국가대표님 감독도 있었다. 김도훈 감독과 홍명보 감독도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외국인 감독들과의 협상은 더 늘어지기 시작한다. 연봉과 상주 조건에다가 한국인 수석 코치 선임이라는 조건까지 따라붙은 것이다. 보통 외국인 감독들한텐 수석 코치진이 있다. 원팀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 본인의 연봉은 20억 원이어도 실제 비용은 1.5배 이상을 고려해야만 한다. 외국인 감독 선임의 국룰을 대한축구협회가 따르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외국인 감독 선임은 난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후보를 12명에서 20명으로 확대한다. 국대 감독 선임이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진 것이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회는 6월 28일이 돼서야 파이널4 리스트로 압축한다. 한국인 감독 1인과 외국인 감독 3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작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6월 28일 전격 사퇴해버린다.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134일이나 이어진 역대급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당한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자신이 직접 선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위약금까지 주고 몰아내 놓고 더 나은 외국인 감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해성 위원강화위원회를 정몽규 회장이 계속 신임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한국인 감독을 국내 축구팬들에게 설득해내지도 못했다. 죽도 밥도 안 된 것이다. 


이제 전력강화위원회는 기능정지 상태에 빠졌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대행을 맡았지만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는 7월 2일 유럽에서 거스 포옛 그리스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만났다. 이어서 다비트 바그너 영국 노리치시티FC의 감독을 만났다. 거스 포엣은 기성용을 지도했었다. 다비트 바그너는 황의조를 지도했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파울로 벤투 감독 선임 배경을 “주제 무리뉴처럼 세계 축구 흐름을 이끌고 있는 포루투칼 출신 감독”이라고 설명했다. 축구팬들을 설득하는데는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정해성 위원장이 남긴 아수라장을 수습해야만 했던 이임생 이사한테 이런 논리가 있을 턱이 없었다. 


7월 5일 금요일 저녁 이임생 이사는 홍명보 감독을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홍명보 울산HD 감독은 그날 수원FC전을 앞둔 인터뷰에서 “이임생 이사를 만나야할 이유가 없다”며 선을 그은 상태였다. 울산HD팬들이 홍명보 감독을 피노키홍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난 130일 동안 국대 감독으로 하마평에 오를 때마다 이렇게 단호박으로 부인해왔기 때문이다. 141일 동안 노라고 하다가 142일째에 예스라고 한 이유를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홍명보 감독은 집 앞에서 2시간을 기다린 이임생 이사를 마다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7월 6일 토요일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직 수락 의사를 밝혔다. 하루 뒤인 7월 7일 언론을 통해 홍명보 선임 사실이 흘러나왔고 7월 8일 월요일에 공식 발표됐다. 2월 감독 선임이 처음 시작됐을 때도 홍명보 감독이 거론됐다. 울산HD팬들이 트럭 시위까지 했을 정도였다. 결국 홍명보였다. 돌고 돌아서 어차피 홍명보였던 셈이다. 


홍명보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행정 일을 하며 그 일에 큰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왔다. 축구 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의 연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루지 못했다. 정책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실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A대표팀 감독이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홍명보 감독은 승부욕이 꿈틀거렸다고도 했고 나를 버렸다고도 했다. 비장미는 있지만 축구팬들을 설득하진 못했다. 한국축구는 개인적 승부욕의 대상이 아니다. 나를 버렸다고 했지만 버린 건 울산HD였다. 


그런데도 구태여 홍명보 감독의 명분을 찾자면 그 일이다. 홍명보 감독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축구협회의 전무이사로 일하면서 만들려고 했던 시스템 말이다. 홍명보 감독은 전문이사로서 대한축구협회 안에서 김판곤 위원장의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해줬다. 김판곤 위원장이 파울로 벤투 선임을 매끄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홍명보 전무의 보이지 않은 역할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홍명보 전무는 대한축구협회 시절 카리스마 있는 행정 리더쉽을 보여줬다. 2002년 월드컵에서의 주장 리더쉽을 행정에서도 발휘했던 것이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도 홍명보 전무 시절 대한축구협회에서 함께 일했다. 그 시기에 한국 축구는 월드컵과 올림픽과 U20 월드컵을 선명하게 구분하고 각각의 감독과 코치와 선수 선발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홍명보 감독이 2020년 울산HD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였다. 울산HD는 2021년과 2022년에 K리그를 2연패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주먹구구식으로 위르겐 클린스만을 선임했고 급기야 2023년 3월엔 승부조작 행위자를 사면하는 자살골을 넣었다. 


나를 버리고 대한민국 축구만 생각한다는 홍명보 감독의 말은 붕괴된 한국 축구 시스템에 대한 얘기다. 모든 시스템은 진보는 어렵지만 퇴행은 순식간이다. 이미 한국 축구는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월드컵 대표팀은 140일 동안 선장조차 없었다. 손흥민 보유국인데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건 분명 발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의 문제다. 리더쉽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의 선택은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은 도박에 가깝다. 축구는 결과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전쟁터다. 위르겐 클린스만조차 아시안컵에서 연승할 때만큼은 환호의 대상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2002년 월드컵에선 영웅이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역적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1무2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자 경기를 앞두고 땅투기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홍명보 감독 본인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고백하는 암흑기다. 홍명보 감독은 다시 그 전장을 선택했다. 아무도 홍명보를 반기지 않는 그라운드다. 9월 열릴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에 모든 것이 달렸다. 




온라인 인물 도서관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인물을 읽다 인생을 알다 라이프러리 

돌고 돌았지만 어차피 홍명보

홍명보의 전술적 실패




중소기업뉴스에 기고했던 칼럼의 원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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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엔 관심 없다더니⋯ 울산 팬심 외면한 채 ‘독배’ 든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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