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 봐줘야지..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래서 너도 나도 아는 게 너무 많다.
스쳐 지나가는 정보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제, AI가 내놓은 책임 없는 대답마저도 자신의 지식인 양한다. 뭐, 그래도 괜찮다.
진짜 문제는, 자신이 어떤 상태이고, 어느 정도에 있는지, 아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게 무엇인지 점차 알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온갖 미디어에서 본 정보와 글이 다 자신의 일부가 됐다. 그들이 준 말이 자신의 말이 된다. 그들이 준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 된다. 더 문제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좋은 이야기 중에서도, 굳이 굳이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굳힐 것들만 선별하여 습득한다는 것일 지도..
길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면 한 시간이 넘도록
'진짜 자신을 만나자고 설득'만 한다.
이런저런 수많은 주장들 속에 결국은 이 말을 꺼내고야 만다.
'생각하는 거 말고, 말하는 거 말고, 들은 것 말고, 살아내고 있는 게 당신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말이 결코 틀려서가 아니다. 훈수를 두고, 비판을 하는 것도 실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대국을 치를 줄 알아야 한다. 거기까지 판을 끌고 갈 힘이 필요하다. 그때가 되면 마치 3자가 된 듯 내가 둔 바둑판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은 아직 훈수를 둘 때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더라도 그 한복판에서 살아내며 해야 한다.
'지금 알고 있고 말하고 있는 게, 맞고 틀리고는 현시점의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새벽 동틀 무렵 힘든 몸을 일으켜 세워서, 새벽공기를 마시러 나갈 의지를 기르고, 힘든 일과가 마치는 시점에 하루를 돌아보며 하루를 감사하고, 돌아볼 여유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쉬는 시간 시간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중한 마음을 나눌 지혜를 기르고, 주어진 일을 할 때 그 과정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는 법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마음을 느끼는 법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훈련하고, 생각이 흘러나오는 것과 생각을 만들어가는 법을 훈련해가야 합니다.'
살아낸 삶이 답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삶은 오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기준이 뭔지 모르지만 그 기준이 무엇이든지 간에.. 아마도)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더욱 제대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 모를까. 미디어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옛날처럼 TV가 바보상자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수단이고 도구가 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의 시작부터 끝까지는 남에게 맡기고 사는 문제다.
'살아내며 마주하는 세상은 어떤 영역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고, 어떤 영역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그 세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될 때면 그때 내 생각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더해보기 위해서 책도 보고 온갖 좋은 정보의 통로들에 들어가 보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빌려보는 겁니다.'
내가 만나온 청년들은 진짜 자신을 인정하고 바라본 이후에 그런 말들은 하고는 했다.
삶의 불안정성과 불안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불확실성과 가능성 사이에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봐주는 게 참 어려웠다고.
'자신이 안 봐주면 누가 봐줘요. 그렇게 열심히 버티고 싸우고 있는 자신을 자신도 안 봐주고 외면하면 어떻게 해요. 봐줘요.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당신이 정말 당신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 도망가고 싶어 하고 숨고 싶어 하는 자신도, 그것을 버티고 견디는 것만으로 이미 하루 살아갈 에너지의 절반이 넘게 쓰이고 있는 스스로의 인생을 바라봐주세요. 인정하던 인정 해주지 않던, 당신의 인생은 그 지점에서 매일 다시 시작되고 있어요. 살아내고 있는 모습의 그 지점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