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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Jul 12. 2018

비가 와서 지렁이가 좋아서 난리가 나서 그래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다. 밤사이 내린 비로 축축해진 길가에 지렁이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지렁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에 밟혀서,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 바퀴에 터져서 죽겠지!’


안쓰러웠다. 살려주고 싶었다. 징그럽다는 생각을 접고 긴 나무막대기로 지렁이를 들어 올려 땅이 있는 곳으로 옮겨주려고 했다. 그러자 지렁이는 자신을 해치는 줄 알고 꿈틀꿈틀 심하게 몸서리쳤다. 그 진저리치는 모습을 보자 더 징그럽게 느껴져 이내 포기했다.

집에 돌아보니, 늦잠을 자는 줄 알았던 딸이 일어나 있었다. 딸에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했다.


"지렁이는 아마 지나다니는 사람들 발에 밟혀서 죽을 거야. 그렇지 않다 해도 뜨거운 햇볕에 말라 죽겠지."


그랬더니, 딸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우리가 살려주러 가자."


그러더니 비닐장갑을 양손에 끼고, 싸움터로 나가는 용감한 장군처럼 으쌰으쌰 집을 나섰다.


딸에게 아기 때부터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고는 ‘자연이다. 자연 생물은 모두 좋은 것이고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달리 딸은 벌레를 징그러워하지 않는다.     

지렁이를 봤던 장소로 딸을 안내했다. 이미 지렁이는 터져 죽어있었다. 죽어버렸다. 지렁이가 죽었다.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이게 다 인간들 때문이야. 땅을 시멘트로 덮어났으니까, 흙을 찾지 못한 지렁이들이 죽을 수밖에….'


비참하게 온몸이 터져서 죽은 지렁이를 보며 애도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 말했다.


“비가 와서 지렁이가 좋아서 난리가 나서 그래. 결국 목숨까지 잃었잖아.”


인간 탓을 하고 있었던 나는 딸의 말에 하던 생각을 멈췄다. 자연스레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     

비가 오면 지렁이는 좋아한다. 너무나 좋아서 시멘트 바닥으로 기어 나온다. 너무 좋아서 난리가 난 것이다.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기분이 좋은 일이 생겼어도 그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비가 그쳤고 돌아갈 방향을 잃은 지렁이는 결국 죽어버렸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했다. 중도(中道)를 걷는다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생물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인 듯싶다. 중도를 잃으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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