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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Jul 05. 2018

지하철 수다, 괴롭다

지하철에서 외국인을 많이 본다. 경험에 의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은 무척 시끄럽게 이야기한다. 거기에 비해 동남아나 일본인들은 조용하다. 지하철에서 시끄러운 유창한 영어 발음과 큰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게 여러 번이다. 마음 같아서는 ‘좀 조용히 말하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설픈 영어 발음으로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일까. 뭐라고 하는 한국인은 한명도 없다. 단 둘의 대화소리가 지하철 플랫폼을 가득 메운다. 해외유학파 한국인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말 할 때보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건 왜 일까?   

 

아침 출근길,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백팩을 앞으로 돌려 메고 지퍼를 열고 책을 꺼낸 다음, 지퍼를 열어 놓은 상태에서 그 위에 책을 펼쳐 놓는다. 지금 읽는 책은 허태균 교수의 <어쩌다 한국인>이다. 재미있지만 쉽게 팍팍 넘어가지는 않는다. 가끔 ‘과연 한국 사람들이, 또 내가 그런가?’라는 자문자답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내 옆 어떤 사람이 시끄럽게 아침 독서를 방해한다. 한 잔소리꾼 스승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한다.

조용한 아침 출근길에서 오랫동안 전화 통화하는 사람, 오랫동안 옆 사람과 얘기하는 행위는 민폐이다. 퇴근시간에는 시끄럽게 하는 사람은 많아도 아침 출근길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다. 출근길 지하철은 대부분 부족한 아침잠을 보충하거나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보거나 듣고 있어 조용하다. 이런 조용한 분위기에서 단 한 사람만이 계속, 쉼 없이, 오랫동안 이야기한다고 상상을 해보라.

1)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2) 중간쯤에는 ‘누구지?’ 하면서 얼굴을 보려고 하고 3) 마지막에는 ‘쟤 뭐야?’라며 얼굴표정이 찌그러진다.

잠깐 들어보니, 그 말 많은 스승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상사이고 듣는 사람은 부하 직원이었다. 직장상사는 신이 나서 부하 직원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했다. 주요 전달사항은 “책을 읽어라”이다. 이 직장상사는 어디서 읽은 좋은 말을 인용하면서 설명했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 일방통행이다. 듣는 부하직원은 맞장구치는 소리 한 마디도 없는데 직장상사 혼자 신나서 떠든다. 그래서 더 안타까워진다. 책만 읽으면 뭐하나? 대화의 기본을 모르는데 말이다. 대화라는 것은 상대방과 오가는 말이 있고 서로의 반응이 있는 상호작용이다. 어찌 혼자서 일방적으로 떠드는데 그것이 진정한 배움이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교훈이라도 상대방이 들을 자세가 안 되어있으면 배움이 될 수 없다. 요즘말로 영양가 1도 없는 행동이다. 나는 직장 상사 분을 보면서 "책을 읽어라"고 하기 전에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한 사람인가 돌아보기를 바랐다. 부하직원의 얼굴을 돌아보니 만원인 지하철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니까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일이 많아 퇴근이 많이 늦었다. 늦은 시간, 지하철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피곤한 눈으로 그럭저럭 책을 읽어 내려갔다. 문이 열리자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이 뛰어들다시피 지하철을 탔다.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다. 재잘재잘 시끄럽다.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하교 길 버스, 나도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런 우리를 보면 어른들은 “좀 조용히 하라”며 소리쳤다.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 어른을 닮았다. 지금은 독서를 잠시 접어두자. 아이들을 지켜본다.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느라 힘들었겠구나. 그래 너희도 고생 많다.  


퇴근길, 20대 여성 두 명이 수다 떤다. 그 옆에 서 있는 20대 남자가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한다. 한명의 남자는 쉴 틈 없는 두 여자의 수다에 지지 않는다. 수다스런 아줌마처럼 보인다. 누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수다스럽다고 했는가?   


지하철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다. 나만의 공간이 아니니까 말하는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봐야한다. 이럴 때 눈치는 예의이고 배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하지 않는 행동 때문에 많은 지하철 이용자들이 해를 입는다. 좁은 공간에서 말할 때 유독 나만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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