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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Jul 05. 2018

백색음악이 필요한 순간

큰 소리로 전화통화하는 사람들

2년 전에는 새벽 6시에 지하철을 탔다. 이른 새벽 지하철 안은 조용하다. 책 읽기 좋은 환경이다. 수다스럽게 전화 통화하는 사람도 없고 떠드는 사람도 없다. 카카오톡, 전화, 문자가 없으니 몰입독서 하기 좋다. 그렇게 나는 새벽 출근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출근길을 나만의 독서시간으로 만들어갔다.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전철을 타다보니 지정좌석도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평화로운 독서를 방해하는 복병이 나타났다. 30대 여성이었다. 그녀 역시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전철를 탔고, 같은 좌석에 앉았다. 바로 내 옆자리였다. 짧은 치마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짙은 향수 냄새를 풍겼다. 그녀는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의 아니게 듣게 된 통화내용으로 그녀의 신상까지 알게 되었다. 돌싱이 된 후 얼마 전에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채팅으로 알게 된 남자와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지하철만 타면 내릴 때까지 늘 전화통화를 했다. 그녀의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았다. 듣기 싫었다. 그런데 들렸다. 며칠 겪은 후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칸으로 지정좌석을 변경했다.

     


“오빠~오빠”

“어~좋아. 너무 좋아”

콧소리 내며 거리낌 없이 닭살 돋는 멘트로 전화통화를 한다. 심지어 영상통화하면서 스킨십 흉내까지 낸다. 어쩌면 저런 닭살 돋는 멘트를 많은 사람이 듣는 전철에서 저렇게 오랫동안 통화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흥미롭게 지켜봤다. 나중에는 짜증났다. 듣고 싶지 않은데 밀착된 좁은 공간이라 안들을 수 없었다. 기본적인 공중도덕조차 지키지 않는 그녀. 왠지 나는 남자의 마음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젊었을 때 연인들의 사랑 좋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라. 그렇다고 해서 이런 대중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다 알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전혀 알고 싶지 않다. 당신의 사랑 놀음, 푸념, 넋두리를 내가 왜 들어야하는가?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에, 그것도 코앞에, 바로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들어야 하는가? 공중장소이지만 소음으로부터 차단 받을 권리가 있다. 꽉 찬 지하철 안, 끈질기게 오래 통화하는 사람들 때문에 기가 빨린다. 급 피곤해진다


할아버지가 귀가 들리지 않은지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한다. 화들짝 놀라 쳐다봤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모른다.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전화를 한다. 다행히 통화가 길지는 않다. 휴~ 안심이다.


퇴근길 지하철, 운 좋게 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서 앉은 30대 남성이 전화를 한다. 목소리가 고음에 가볍다. 웬만한 아줌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굉장히 수다스럽다. 시장 통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여자 친구와 통화하면서 자기 딴에는 나름 멋진 표현이라며 주저리주저리 '자연산 회'의 맛깔스러움을 자잘하게 말한다. 언제 이 대화가 끝나질 모르겠다. 좌석은 포기하는 싫은데…. 고민이다.


한 명의 안하무인이 수십 명의 묵인을 가볍게 묵살하는 세태. 제발 지하철에서는 용건만 간단히 통화하자. 개개인은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수십 명은 듣지 않을 자유도 있다.


다행히 나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최근에 설치한 어플 백색음악. 듣고 싶지 않을 때, 이어폰이 터질 듯 크게 듣는다. 이럴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어 좋다고 해야하나?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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