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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Jul 06. 2018

책 대가리만 보라고

지하철 술주정


주말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지하철을 타면 나는 책을 읽는다. 그날도 책을 읽고 있었다. 술 냄새가 풍기는 아저씨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냄새만으로도 내가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술 취한 아저씨가 말했다.


"책 대가리만  봐. 책 대가리만 보라고…."


나한테 한 소리인지 모르고 계속 보던 책에 밑줄 쫙쫙 그으면서 보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답답해보였는 또 말했다.


"교수들도 다 사기꾼이고 멍청이다. 책에 있는 내용은 모두 뻥이야."


그러면서 계속 반복해서 말한다.


"대가리만 보라고 책 대가리만 보라고"


아저씨는 책을 읽을 때 소제목만 보고, 그렇게 열심히 읽을 필요가 없다며 잔소리를 한다.
 

내 인생의 최악의 시기에 책은 위로 그 자체였다. 책은 직접적으로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었다. 절망에 빠진 나에게는 책은 희망을 주고 인생을 변화시킬 힘을 주었다. 아낌없이 주어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처럼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

물론 책 중에는 무책임한 악서도 많다. 나도 악서를 읽었다. 그러나 그때의 경험은 양서를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게 했고, 지금의 나는 바른 독서의 길을 가고 있다.


"그래도 책을 계속 읽으세요. 세상에는 양서가 더 많고 그것을 받아들고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라고 술 취한 아저씨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왜냐? 술 취한 아저씨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본 술 취한 사람들의 유형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째, 혼잣말하는 유형으로 쉴 새 없이 넋두리를 한다. 가끔 술 취한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착각하면 안 된다. 술 취한 아저씨는 그 사람 말을 들으려고 말을 한 게 아니다. 결국 자기 혼자 떠든다. 이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지하철에서 술 드시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말싸움으로 번진다. 술 취한 안면몰수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둘째, 행동 민폐형이다. 극히 일부이지만 7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 혼자 드러눕는다. 신발까지 벗어놓고, 코까지 곤다. 이런 사람 주변에는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없다. 다들 알고 있다.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을.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가족도 아니고 직장동료도 아니다. 일면식이 없어 그런지 터무니없는 행동도 참 많다.

술을 마시는 거 좋다. 술을 마시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술을 마실 때 자신의 술버릇을 알고 절제할 줄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똥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말이다. 똥이 될 것인가. 사람이 될 것인가.  한 끗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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