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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Jul 09. 2018

지하철 자리 쟁탈전


일찍 출근하려고 급행열차를 탔다. 빨리 가는 대신 사람이 많다. 어제 늦게까지 일을 해서 피곤하다. 앉고 싶다. 앞에 앉은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빨리 내려라. 빨리 내려라.’


내리려는 신호가 온다. 내 주문이 통했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내 옆에 선 덩치 큰 아줌마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먼저 아줌마 어깨가 내 앞으로 쑤욱 들어왔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상체를 드는 순간, 그 아줌마가 내 발을 밟고 무리하게 들어가 앉는다. 재빠른 행동에 어안이 벙벙이다. 눈 뜨고 자리 새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내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온다. 내 눈빛을 인지했는지 아줌마는 앉자마자 가방을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는다. 졌다. 저런 막무가내는 당할 수 없다.

이내 위로모드에 들어갔다. ‘저 아줌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네. 나보다 서 있기 더 힘들 거야. 그래. 내가 양보한다.’ 속으로 외쳤다.
 

퇴근길 급행열차를 탔다. 조금이라도 일찍 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급행열차는 사람이 많다. 서 있기조차 힘들다. 어라. 기대도 안했는데, 내 앞에 있는 학생이 일어났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옆자리에 선 아가씨의 행동이 수상하다. 앉아 있던 학생이 그 자리에 일어서자 아가씨가 몸을 옆으로 돌리며 엉덩이를 내민다. 순간 내 엉덩이와 맞닿았다. 엉덩이 힘 대결이 시작되었다. ‘거참, 아가씨가 어찌 이리 안하무인일까” 지난번과 똑같은 상황이다. 얼굴 두꺼운 아줌마한테 자리를 빼앗긴 기억이 순간 떠올랐다. 잠깐 과거 회상에 잠긴 사이 엉덩이 힘에 밀리고 말았다.

또다시 여우의 신포도처럼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지난번에 아줌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힘들겠지’라며 양보한다라고 크게 선심 쓰듯 위로를 했는데, 이번에 뭐로 위로를 하나? 이번에는 엉덩이 힘에서 밀렸다. 젊은 피에는 대적할 수 없다는 건가. 그러기엔 나도 젊다. 지금 보니 아가씨는 굽이 5cm정도 되는 부츠를 신었다. 오늘 그 구두를 신고, 눈밭을 많이 걸어서 힘들었구나. 젊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늘 유독 피곤한 날이어서 꼭 앉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나저나 나는 왜 나이 많은 아줌마한테도, 나이 어린 아가씨에게도 밀리는 걸까? 체력이 문제인가? 이렇게 합리화하는 내가 한심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답을 알았다. 내가 그녀들보다 자리가 절실하지 않아서였다. 그녀들은 절실했기에 막무가내, 안하무인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더 서 있을 수 있었기에 그렇게 안하무인이 되지 않았던 거다. ‘그럼 내가 더 체력이 좋은 거네.’ 이렇게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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