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똑서 Sep 28. 2018

엄마, 내 방 만들어줘

친구 집에서 놀다가 온 딸이 뜬금없이 말했다.


“엄마, 내 방 만들어줘. 나 이제부터 혼자 잘 거야.”

     

  친구는 자기 방이 있고, 그곳에서 혼자 잔다고 하니까 어른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그게 부러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지나갔다. 그냥 일시적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뒤로도 혼자 잘 거라며 빨리 방을 만들어달라고 보챘다. 딸이 보채는 통에 아이 아빠가 방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안방에 붙어 있던 더블침대와 싱글침대 중에서 싱글침대를 하나 떼어내 작은 방으로 이동시켰다.

  아이가 혼자 자겠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 직장동료들에게 상담했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답을 해주었다.

“절대 혼자 자지는 못 할 거야. 아이가 혼자 자겠다고 해도 무섭다며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어”

내가 먼저 벌써 엄마 품을 떠나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고 서운하다고 서두를 풀어서 그런지 몰라도 다들 그렇게 빨리 떨어지지 않다고 했다. 그 말에 안심했다. 난 아직 아이와 떨어질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어떤 직장동료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혼자 자니까 더 편하지 않아요? 부러워요.”


  그 말을 들으니까 오래전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를 낳고 아이 침대를 만들어줬다. 물론 내 침대 옆에 마련해두었다. 젖을 먹이고 있었던 터라 새벽녘에 아이가 깨면 뉘여서 젖을 먹이고는 그대로 내 침대에서 잠들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딸은 아기 때부터 내 옆에서 잠을 잤다.

  처음부터 아이와 같이 자는 것이 달가웠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 내 옆에 착 달라붙어서 뒤척거리고, 또 어느 날에는 발로 내 얼굴을 박차기도 하고, 360도로 빙글빙글 돌면서 자는 아이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자다가 당하는 봉변에 ‘언제쯤이면 나 혼자 편하게 잘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참 많이 했다.

  아이가 6살, 7살, 8살이 되니 잘 때 움직임이 적어졌고,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곤 했다. 그러니까 내 느낌도 달라졌다. 섭씨 36.5도의 작은 몸이 따듯해서 좋았다. 내 겨드랑이 옆에서 새근새근 내는 숨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몰랑몰랑한 아이 피부를 만지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딸과 자는 게 좋아졌다. 이제는 딸이 없으면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가 되었다.


느닷없이 닥친 딸의 독립선언, “이제 혼자 잘 거야”라는 말에 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졌다. 허전했다. ‘이 기분은 뭘까?’ 아직 혼자 잘 준비가 안 된 나는 비겁하게 딸에게 겁을 줬다.


“밤에는 장롱에서 귀신이 나와서 무서워. 조금 더 크면 그때 혼자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혼자 자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알고 있다. 나는 쿨한 척 말했다.

“그래! 이제 혼자 잘 때가 됐구나. 엄마가 서운했나봐. 귀신은 없어. 대신, 자다가 무서우면 엄마 방으로 와. 알았지?”


딸이 내 서운한 마음을 아는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엄마가 나랑 자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엄마랑 자 줄게.”

     

딸이 혼자 자겠다고 하는 마음을 받아들이고 딸에게 말했다.


“지금은 딸의 말을 존중해줘야지. 오늘은 혼자 자고, 엄마가 딸이랑 자고 싶으면 그때 말할게. 고마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잘 자라는 뽀뽀를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참 잘 잤다. 5시에 일어나서, 아이가 자는 방으로 가봤다. 아이도 잘 자고 있다. 발로 차버린 이불을 덮어줬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딸은 잘 자고 있다. 가끔 나와 자기도 한다.)

  흔히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가 살아있을 때 효도하라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아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도 부모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도 나이에 따라 필요한 부모의 사랑이 다르다. 언제까지나 엄마의 손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의 사랑도 모양이 변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모양을 바꿔야 할 때이다. 이제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마음 놓고 지켜볼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지금 아이가 필요로 하는 사랑의 모양을 잘 빚어서 후회 없이 듬뿍 줘야겠다.


20살이 넘으면 너의 세상, 너만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내 품을 떠나야겠지. 딸, 큰 세상을 보고 새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기억하렴. 돌아와서 쉴 수 있는 따듯한 엄마 품이 있다는 것을….

오잉~벌써부터…. 너무 멀리 갔다.


내 딸은 지금 8살이다. 아이는 금방 큰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작가의 이전글 예수님 믿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