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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Oct 11. 2018

가슴이 답답해

남편은 과자를 좋아한다. 야행성인 남편은 딸과 내가 잠든 후 몰래 감춰둔 과자를 꺼내먹곤 했다. 과자 한 봉, 한 박스를 한 번에 그 자리에서 해치운다. 다음날 아침에 남편이 있던 책상에는 가보면 그 처참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반면에 딸은 과자를 사줘도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보물 상자에 담아두고는 조금씩 꺼내먹는다. 언젠가는 딸이 아껴두고 모아놓은 과자를 남편이 몰래 먹다가 들킨 적이 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딸은 눈에 띄게 줄어든 자신의 과자를 보고 아빠를 의심하고, 물증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처참하게 뜯긴 자신의 과자봉지를 아빠 책상에서 발견하고는 딸이 눈물콧물 흘리면서 악을 쓰며 운적도 있다.


남편이 아침형 인간을 시도하면서 과자 먹는 습관은 많이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디선가 사온 과자를 퇴근 후에 집에 와서 가만히 가만히 꺼내먹는다.


그걸 본 딸이 아빠한테 잔소리를 한다.

“제발 한 번에 하나씩만 먹어. 그러다가 뚱뚱해져”


그렇게 일장연설하고 뒤돌아서는 그 순간에 아빠가 또 입에 과자를 물었다. 그걸 본 딸이 또다시 아빠에게 잔소리를 시작하고 아빠는 역시나 건성으로 알았다고 말한다.


딸이 설거지하는 나한테 와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딸이 말했다.

“엄마, 여기가 너무 답답해”


“왜 그러냐?”

내가 물었다.


딸이 가슴을 치며 말한다.

“내가 말해도, 몇 번을 말해도 아빠가 계속 내 말은 안 듣고 과자를 많이 먹어”


7살 딸이 가슴이 답답해서 자신의 가슴을 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나도 살아오면서 뭔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지면 가슴을 친 적이 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깊은 한숨을 내몰아쉰 적이 있다. 그래서 가슴을 친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안다.

'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나약함'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슴을 치며 답답하다고 느끼는 대상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나약함의 대상 1호가 자신의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남편에게 잔소리와 협박을 해보았다. 그렇게 남편을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알았다. 남편은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걸. 괜히 내 에너지만 빼앗기고 내 기분만 안 좋아졌다. 남편을 포기한 것인지, 인정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관심을 끊었다.


관심을 끊으니 남편의 그런 행동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딸, 아빠가 과자 먹는 거 그냥 포기해. 아빠는 안 바뀐다. 신경 쓰면 너만 힘들어.”


그랬더니 딸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엄마, 왜 포기해? 아빠가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해?”


그러더니 자기가 아빠를 관리하겠단다. 그리고는 아빠 책상에 다음 내용을 붙였다.

(7살 때 쓴 딸의 글은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쿠키는 하루 한개가 좋습니다. 블라블라~~ 약속 약속 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


나는 제3자로 아빠와 딸을 관찰해야겠다. 아빠의 고질병인 습관이 승리할 것인지 딸의 사랑과 도전이 승리할 것인지 지켜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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