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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서 Dec 22. 2018

그냥 느낌으로 아는 거지

"엄마, 나는 금요일 밤이 제일 좋아. 왜냐하면 내일이 쉬는 날이잖아."

딸은 이제 7살이다. ‘금요일 밤이 좋다’라는 것은 학업에 시달린 중고등학생 때부터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서른 살 즈음에 금요일 밤이 좋은지 알았다. 왜냐하면 학교 다닐 때는 토요일에도 오전 수업이 있었고, 처음 직장에 다닐 때도 토요일에 출근했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노래도 ‘토요일 밤이 좋아’였다. 금요일은 그냥 평일이었다. 직장 생활하고 얼마 후에 주 5일제가 시행되었다. 주 5일제가 시행되고 나서도 금요일보다 토요일이 좋았다. 토요일에는 쉴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금요일 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은 토요일에 출근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없고, 다음날이 휴일이라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뒤늦게 안 사실을 7살인 딸이 벌써 안다는 것이 신기해서 물었다.

"딸, 너는 어떻게 그걸 알았어? 엄마는 스무 살 훨씬 넘어서 알았는데?"

그랬더니 딸의 말이 더 기막힌다.

"나도 몰라. 그냥 느낌인 거지. 그냥 느낌이 그래."

이 말보다 더 명쾌한 답이 있을까? 그냥 금요일 밤이 좋은 건 느낌이다. 느낌!

그게 답이다. 그럴싸한 말로 이유를 갖다 붙여도 그 느낌이 없으면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느낌! 어쩌면 우리가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이나 그럴싸한 허례허식이 아니라 이 느낌을 느낄 줄 아는 게 아닐까?

요즘 딸은 ‘느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7살 딸에게 “딸, 네가 5살 때 엄마한테 ‘몸이 커지는 만큼 마음도 커져요?’라고 물어본 적 있는데, 네 마음이 5살 때 보다 7살 때 더 커진 것 같니?”라고 물어봤더니 딸이 “어. 커졌어”라고 말했다.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커졌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다시 물었더니 “다 느껴져”라고 말했다. 느낌으로 마음이 커졌다는 걸 확신하며 말했다. 참 신기하다. 7살인데도 이렇게 확실히 느낀다는 게 말이다.

살면서 겪는 문제의 90퍼센트 이상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인간관계만큼 느낌에 좌우되는 것도 없다. 인간관계야말로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이 내버려둬야 한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있겠지만, 그런 관계는 일시적일 뿐이다. 누가 나에게 잘하면 그를 좋아할 수 있지만, 잘하던 그가 갑자기 잘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가 유지될까? 

내 느낌, 내 행복 없이 나에게 의미 있는 인간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마음에 들면 사귀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애써서 노력하려고 할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다. 내가 애써서 노력해야지만 유지되는 관계는 정상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주고받는 Give and Take가 정상이다. 일방적으로 주거나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는 자연스럽지 않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가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이른바, 롤모델이 생겼다. 어디서나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그녀가 멋져 보였다. 그녀를 닮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녀와의 관계는 항상 내가 먼저,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노력도 점차 시들해졌고, 그녀와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인간관계는 이렇게 순간 열정적으로 뜨겁게 타올랐다가 확 소멸해버리기도 한다. 그런 인간관계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인간관계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니까.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되는 인간관계는 바로 내가 힘을 뺐을 때였다. 

내가 애써서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가 조금씩 Give and Take가 되는 사람과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자연도 Give and Take라는 균형 법칙에 의해 서로 존재한다. Give and Take는 물질적인 주고받음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순조로운 주고받는 좋은 느낌도 포함된다. 


내가 남편을 만난 건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감, 즉 좋은 느낌이 있었다. 느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지금도 사람을 만날 때 느낌이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느낌 좋은 물건들을 사고, 어떤 결정을 할 때도 느낌이 좋은 것을 선택한다. 살아가면서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누가 무어라 해도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니까.

불합리하고 즉흥적이고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들린다고? 그런데 느낌이 없다면 사는 맛이 없지 않을까? 지금 다들 ‘나답게 살라’고 말한다. 나답게 사는 게 무언가? 바로 내 느낌대로 느낌에 충실하게 사는 거다. 내 안의 목소리를 찾고 내 느낌대로 사는 것이 바로 나다운 것이다. 느낌적인 느낌!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이 살아있음을 반증한다. 본인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그것.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것. 인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이다.

문제는 그 느낌을 잃어가고 있다. 왜 잃어가고 있을까? 다양한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과 넋을 빼놓는 대중매체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있다. 뒤쳐질까 봐 그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지나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수많은 정보와 지나친 많은 행위와 노력이 나의 느낌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집과 자동차,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버느라 무언가를 느낄 여유가 없다.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온전히 내 안을 들여다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도 없다. 


느낌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비워내야 한다. 지나친 입력 행위와 애쓴 노력은 잠시 내려놓고 내 느낌을 주시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어떤 생각을 할 때 더 기분이 좋게 느껴졌지? 나는 이럴 때 이런 기분이 들었지. 그래 나는 이것을 할 때 기분이 좋았어. 느낌을 찾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나의 느낌을 알아차릴 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면 성공보다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이라는 것도 결국 나의 기분 좋은 느낌일 뿐이다. 더 기분 좋게 느껴지는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소로는 <월든>에서 “내 머리가 손이고 발이다”라고 말했다. 내 손과 발로 직접 겪어보는 과정에서 깨닫는 느낌. 그게 바로 나다. 느낌이 ‘진정한 나’다.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온전한 시간과 경험을 나에게 선사해주며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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