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홈스쿨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 Oct 16. 2019

지지고 볶는 사이 아이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중

우리 삼총사는 바쁘게 살고 있다.

지난 몇 건의 글들이 홈스쿨링으로 인한 힘듬에 대한 글 들이었는데, 이번은 조금은 화사한 글이 될 듯싶다.


제대로 홈스쿨링을 시작한 지 이제 1달이 조금 넘었다. 아이들은 두 개의 학원(수영 학원, 미술학원)을 시작했고 이는 나에게 각각 1시간 반이라는 귀한 시간을 안겨주었다. 첫째는 예전부터 하던 피아노레슨도 계속 진행중이다. 매주 화요일은 예전에 유치원에 다닐 때 진행했던 'Fun Tuesday'도 다시 시작하여 어제는 KTX를 타고 대전으로 가서 국립중앙과학관에 다녀왔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정말 좋았으나 KTX로 다녀오는 데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KTX 비용+택시비 등등) 힘이 들어 다음엔 꼭 자차로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1달 동안 솔직히 홈스쿨링을 한 것을 후회한 날들이 한 20일 정도는 되는 것 같고 10일은 그럭저럭 지나간 것 같았다. 그 10일도 초반 10일로 이사 와서 어찌어찌해서 지나간 날들이었다. 오늘은 1달 하고도 7일이 지났는데, 그동안 아이들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좀 더 밀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 느낌을 기록하고자 한다.


우선 나는 '아이는 어른 일에 관여하지 않게 한다.' '어른은 아이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숨긴다.'라는 것이 내가 이전에 갖고 있던 나름의 원칙이었다.  나와 아이를 '어른'과 '아이'로 구분 짓고 내 세계와 아이의 세계를 완벽히 분리해왔던 것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23개월 차이인 남아들을 거의 독박 육아로 키우느라 애들 앞에서 넋 놓고 울었던 적은 있었으나, 이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을 때였다. 그 이후 나는 회사에도 나갔고 그 기간 동안은 아이와 있는 시간이 워낙 짧다 보니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고,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이뻐만 하고 귀여워해주고 해 달라는 것을 해주었다. 휴직을 했을 때는 내 감정상태와 내 진로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기분 자체가 좋아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보일 새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홈스쿨링을 하고 아이들 앞에서 감정적으로 무너져버린 적이 몇 번이 있었다. (이전글에서도 볼수 있듯이...) 그런데 아이들이 이제는 꽤 컸는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표정상 그래 보였다) 나름 자신들이 생각한 대안도 내놓는 듯, 어떻게 생각하면 '아이'라고 구분 지어놓았던 내 아들들이 생각보다 나보다 성숙한 존재 같기도 했다. 나이로 구분 지으면 나는 어른, 애들은 아이인데, 애들 앞에서 '엄마 힘들어- 너네 때문에 힘들어. 엄마 홈스쿨링 해서 너무 힘들어' 하는 아기 같은 짜증을 부리면, 서툴지만 토닥토닥 응원해주는 아이들이 어른같았다. 그럴때면 내가 세워놓은 희미한 선이 스르륵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남편이 내 걱정을 심히 하여 카톡으로 11월부터 놀이학교에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무려 2번이나 하였다. 마지막엔 어쩔 수 없이 내가 생각해보겠다고 대답은 했으나 사실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런 대화 후, 큰 아들에게 이렇게 툭 던졌다.


나: 준우야, 아빠가 너네 이제 유치원 보내라는데?

첫째: 왜?

나: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인대. 엄마가 자꾸 피곤해하잖아.

첫째: 아- 싫은데 나 집에서 공부하는 거 좋은데. 그림이나 그리고 놀고 싶은데.

옆에서 듣던 둘째: 싫어 싫어. 안갈꺼야.

첫째: 엄마 이제 우리 학원 가면 그때 엄마 혼자 있을 수 있잖아.


놀랐다. 아이가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걸 알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아이들과 하루를 온전히 같이 있던 날이면 밤에는 넉다운이 되어 '엄마 옆에 오지 말아 줘. 엄마 혼자 있게 내버려두어줘'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그러고 아이들이 잘 때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주 나쁜 것 같진 않다. 그저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space를 달라고 요청한 것뿐이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를 부엌 식탁에 혼자 있게 해 주었다.


난 영화 외에는 TV를 거의 안 보는 편인데 동생의 추천으로 어쩌다 '동백꽃 필 무렵'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계속 보고 있다. 오늘 아이들이 수영을 다녀오고 넷플릭스로 보면서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힐끔힐끔 보기도 하고, 그렇게 셋이 편한 공존의 시간을 보냈다.


또 이렇게 지내다 힘들면 내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엄마라고 꼭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른도 힘들고, 어른도 힘들면 징징댈 수 있고, 울 수도 있고 한숨 쉬어도 되니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너그러운 존재였다.


남편은 회사가 너무 바빠 요즘 거의 아이들과 셋이 지내는 느낌이 든다. 삼총사. 든든한 삼총사. 어딜 가도 함께하는 삼총사. Three musketeers :) 예쁘고 고맙다. 엄마도 이렇듯이 아이들도 힘들 때 지겨울 때 심심할 때 엄마한테 편하게 표현해주길. 힘들 때 엄마한테 툭 얘기하고 나는 그걸 자연스럽게 수용하여 함께 영화를 보던, 같이 나가서 걷던... 그런 게 어색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그런 모자 사이가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홈스쿨링 계획표를 써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