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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Sep 16. 2019

진짜 홈스쿨링 day 1

세상에나... 평일에 점심 해 먹이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다니.

오늘은 진짜 홈스쿨링 day 1이었다.

9월부터 아이들은 등원을 하지 않았지만 이사+연휴가 있었어서 연휴를 끝내고 처음으로 시작했다.


오늘의 소감을 한마디로 이야기해보자면.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훨씬 더 많이.


사실 오늘 신고식을 제대로 했다.

어쩌면 오늘같이 힘들기도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는지 적어보겠다.  


우선 오늘 아침 나는 미셀 오바마의 'Becoming' 원서 6주 읽기 스타트를 끊었다. 첫 시작은 원래 더 분주하다. 감사하게도 2기 멤버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셔서 행복하면서 바쁜 그런 시간이다. 일찍 일어난다고 일어났는데 6시 반에 일어났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7시부터 아주 잠시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깼다. 아침을 차려주고 서재에서 또 아주 잠시 일을 하고 샤워를 하고 화장을 했다. 홈스쿨링도 하나의 job이라고 생각하고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시작하고자... 정말 선생님처럼 단장을 했다.


9시 땡 하기 전 분주히 준비를 했다. 우리 학생 두 명은 벌써 앉아있었다.


사실 뭘 해야 할지 8:55에도 알지 못했다. 급조하여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쓰던 나의 첫 국어사전을 가지고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급조한 척하지 않았다. 우리 학생 두 명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40페이지에 달하는 국어사전을 스르륵 훑었다. 다시 ㄱ으로 돌아와 눈에 띄는 단어를 찾았다.


가을 


가을: 여름 다음에 오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곡식과 과일이 익어요. 가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요.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요.


우선 첫째에겐 한번 읽어보라고 하고 받아쓰기 공책에 한번 적게 했다. 둘째는 표정을 찌푸리며 자신은 한글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가을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 보라고 했다. 어떻게 그릴 줄 몰라하는 둘째를 위해 단풍 사진을 컴퓨터에서 보여줬다. 아름다운 단풍 사진들을 보며 이런 곳에 가보자고 서로 이야기했다.



단풍이란 단어의 뜻도 나도 거의 처음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초록색 잎이 날씨의 변화에 따라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변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어떠한 현상인 것이다. 아이들은 단풍 사진을 따라 그리며 별 모양의 단풍을 그렸다. 곡식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벼가 익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콩과 수수, 조 등의 잡곡들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그것들을 계속 따라 그렸다. 가을 제철 과일도 알아보았다.


중간중간 둘째가 조금씩 지겨워하며 자신은 가을 과일로 수박 나무를 그릴 거라고, 수박은 큰 나무에서 열리며, 가을에 아주 맛있다고 우겼다. 첫째는 그런 둘째를 비웃고.. 여하튼 그런 minor 한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여기까진 매우 잘되고 있었다. 나름 나는 재미도 느끼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 이런 건 내가 자신 있었다. 위키피디아에서 이 검색어에서 저 검색어로 넘어가고 저 검색어를 읽다보다 또 다른 검색어를 읽고, 이런 것은 내가 자주 하는 취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경비실 인터폰이 왔다. 우리 집 화재경보기가 고장 난 것 같다고. 9-11시까지는 교육시간인데 그래도 화재경보기 고장은 빨리 고쳐야 할 것 같아 오시라고 했고, 고치는데 30분 넘게 걸렸다. 아이들과 공부의 흐름이 끊겼다. 그러고 이내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다시 의자에 앉히니 10:20이 되었다. 둘째는 오늘의 공부 할당량을 채운 것 같아 두고, 첫째에게 뺄셈을 가르쳐줬다. 이것도 첫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쓰던 핀란드 수학 교과서를 가지고 가르쳐줬다. 20분 정도 하니 아이가 집중력을 잃었다. 그래서 마지막은 조앤 K 롤링 위인전을 읽었다. 그러고 나서 롤링이 태어난 영국을 세계지도에서 찾아봤다. 딱 11시가 되었다.


이때 이미 나는 반 지쳐있었다. 아이들이 하원 해서 한 1시간 정도 지났을 때의 피로도였다.


그러나 아직 11시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휴식시간이라고 하고 나는 북클럽 일 때문에 또 얼른 서재방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열었다. 아이들도 많이 공부했으니 휴식시간 동안 신나게 자기들끼리 놀겠지...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아이들은 20분도 안돼서 서재 방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내가 안될 것 같아 간식으로 쌀과자를 한 움큼 쥐어주었다. 15분 후 둘이 또 방에 들어왔다. TV는 왜 안 오는 거냐고. 나는 TV 배달은 수요일에 온다고 얘기했다. 이제 엄마가 문열 때까지는 서재방 문을 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다시 들어왔다. 조금 후 문 앞에서 쏙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엄마한테 배고프다고 얘기해. 간식 말고 점심 먹고 싶다고 얘기해봐.' 첫째 목소리였다. 둘째에게 시키는 거였다. 바로 둘째가 밖에서 이야기했다. 벌써 1시간이 지난 12시였다. 1시간을 앉아있었는데 내가 한 일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얼마 있다 나와서 냉동 돈가스를 에어 프라이기에 넣고 겉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예열도 하지 않은 채 180도 20분을 가동했다. 이젠 나와 노트북도 주방에 나와있었다.



밥을 차렸다. 야채가 없어 밥, 돈가스, 멸치만 내어주었다. 나는 15분 만에 먹고 아이들은 둘이 앉아 먹으라고 했다. 점심 먹는데도 둘이 장난, 싸움, 장난을 반복했다. 이젠 둘째가 나가 자고 한다.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월요일은 이사 오기 전 동네 어린이 운동 센터에서 첫째가 축구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주 친했던 친구와 하는 축구이기에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을 내어 오기로 했다. 축구에 가야 해서 아침부터 마음이 촉박했다. 축구에 가기 전에 사마귀 치료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피부과에 들렀다. 첫째의 손바닥에 툭 튀어나와 있던 그것도 사마귀임이 밝혀졌다. 누가 누구를 옮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염성이 꽤 높다고 한다. 첫째는 엄마가 생기고 나서 자신이 생겼다며 내 탓을 했다. 둘 다 치료를 끝내고 축구 수업에 갔다. 오랜만에 이전 유치원 엄마들 5~6명을 만났다. 반갑고 친근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6시가 다 돼서야 그곳을 떴다.


집에 야채가 하나도 없어 대형마트에 가서 야채만 산다는 게 온갖 냉동식품까지 많은 장을 보았다. 간식과 점심거리가 없는 것이 불안요소가 되기는 싫었다.


집에 오니 8시 가까이되었다.


남편이 오늘 홈스쿨링 어땠냐고 하는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말로 또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그냥 침대에 드러눕고 싶지만 오늘 이 느낌을 꼭 적고 싶었다.


마트에서 사 온 분식을 먹으며 남편과 내년 1월에 계획했던 플로리다 여행 이야기를 했다. 비행기가 많이 힘들 것 같다고. 더 군다가 소망만 가득했던 칸쿤까지 가려면 비행시간이 어마어마하며, 심지어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칸쿤으로 가는 비행기가 2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세금이 세서 생각보다 비행기표 가격이 굉장히 비싸다는 것. 예전에는 '하려면 다 하지~' 하는 자신만만함이 있었는데, 오늘 하루를 보내고 나니 갑자기 자신감이 훅 떨어졌다. 갑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나 혼자서 직항도 아닌 미국 국내선을 또 갈아타는 것이 두려워졌다. 중간에 짐 찾는 것부터, 허구한 날 있는 딜레이까지. 미션 임파서블 같아 보였다. 못할 것 같았다.


엄마들이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들은 계속 아이와 자신이 일상대로 (아이는 기관에, 엄마는 엄마의 삶) 살다가 가는 게 한 달 살기가 아닐까 했다. 나처럼 5개월 반을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이 해외로 가는 건 상당히 다르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젠 아이들이 규칙적으로 다닐 수 있는 (제발 점심도 주는) 그런 기관이 있는 곳으로 한 달 살기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살기 계획이 이렇게 계속해서 바뀔 줄이야... 처음에는 리스본을 가고 싶었는데 1월 날씨 때문에 포기했고, 그다음 계획지인 플로리다는 베프가 살고 있어서 정했던 건데, 오늘 하루 만에 따뜻한 햇살의 플로리다에서 베프와 다시 만나는 그런 꿈같은 소망은 희미해졌고 그저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있고 싶은 그런 1차원적인 욕구만이 남았다.


홈스쿨링을 하루 했는데 한 달 한 느낌이다. 근데 오늘이 일정 자체가 정말 힘들긴 했다. 설마 내일도 이렇게 힘들까...? 이렇게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젠 내가 좀 미련 곰탱이 같아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고생을 자처했을까. 이 미련 곰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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