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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Sep 21. 2019

홈스쿨링 1주 차

내 스타일 찾아가기

1주일이 지났다.


평일 5일을 아이들과 방학같이 내내 온전히 함께 보냈다. 첫날의 chaos를 보냈더니 나머지 4일은 그나마 수월해 보였다. 이래서 매도 먼저 맞으라고 하는 건가?


아침에 꽃단장하고 앉아서 홈스쿨링 일과를 시작하는 것은 첫째 날로 끝났다. 어제는 양치만 했다는 사실... 옛날 같으면 늘어졌다고 자학했을만한 일들이다. 어제같이 외부활동이 없는 날은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근데 개인 일은 어제 제일 많이 했다는 사실. 확실히 아이 둘과 외부 활동을 많이 하면 그만큼 피로도가 큰 건 사실인 것 같다.


1주 차의 소감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꽤 할만했고, 아이들이 너무 예뻤고, 그리고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것은 재미있다. 


Day 1의 소감과는 다소 다른 소감이다.



Week 1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휘갈겨 썼지만 일지를 쓰긴 했다. 확실히 첫날에 한 게 많다. 목요일엔 둘째가 학수고대하던 동물원에 다녀왔다. 역시 과천 서울대공원 참 좋았다.


week 1 일지


내가 가장 즐겼던 수업은 한글 수업으로 단어 하나를 골라서 그 해석으로 다양한 것들을 배워보는 것이다.


Day 1의 단어는 '가을'이었고, Day 3의 단어는 '냄새'였다.

냄새는 코로 맡아요. 음식을 만들면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꽃에서는 좋은 냄새가 나요. 개는 냄새를 아주 잘 맡아요.


이 단어도 아이들이 골랐다. 'ㄴ'에 있는 단어 중에 골라보았다. 좋아하는 냄새와 싫어하는 냄새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해 보았다. 역시나 아이들은 똥, 방귀 이런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어했다.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첫째가 책상을 쭉 둘러보더니 '책!'이라고 했다. 나는 책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려 보라고 했고, 혹시 종이 냄새가 나지 않냐고 물어봤다.


엄마에겐 어떤 냄새가 나냐고 하니 '향초 냄새'라고 하는 아이들. 워낙 향초나 디퓨저를 좋아해서 그런 냄새와 연결시켰나 보다. 아이들은 왜 향초를 켜는지 물어보았다. 아마도 왜 좋은 냄새를 맡고 싶어 하는 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 아침 햇살을 느끼며 누워있는데 '왜 엄마는 햇빛 밑에 있는 게 좋아요?'와 비슷한 질문이었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우선 아이들에게 사람이 냄새를 맡는 그 원리를 대충이라도 아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생의학 전공자로서 기억을 더듬어 설명해보려 하였지만... 기억도 안 나고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유튜브로 'how people smell'이라고 하니 다양한 동영상들이 나왔다. 코의 구조에 대해서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뇌와도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냄새를 맡은 개가 침을 뚝뚝 흘리는 영상이었다. 시각적으로 후각적으로 음식을 느끼고 뇌에서 '맛있겠다. 먹고 싶다'라는 생각 하며 침을 뚝뚝 흘리는 그것을 보고 아이들은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음식점 옆을 지나갔는데 첫째가 '엄마~ 맛있는 냄새에 내 입안에 침이 고여요.'라고 얘기하며 동영상 이야기를 또 했다. 그 과정에서 개가 왜 인간보다 냄새를 잘 맡는지에 대해 간단히 코 안에 냄새 맡는 부분이 40배는 크다 라고 설명해주었다.


냄새에 대한 공부

영어수업은 2번 했다. 사실 영어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없었다.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는데도 이걸 어떻게 어린아이에게 유도해야 하는 지를 몰랐다. '엄마표 영어 책이라도 사서 읽어야 해야 하나.. '했는데 우선 집에 있는 교재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유치원 3년을 다닌 아이에겐 유치원에서 보내준 수많은 교재들이 있다. 3년 동안 다니면서 제대로 봐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마도 유치원에 보낸 이후로부턴 '교육은 유치원, 보육은 내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그렇게 방치되어있던 교재들을 찾았다.


가장 눈에 띈 건 오르다 코리아의 World Fiary-Tale Adventure (WFTA) 시리즈였다. 그나마 아이들 유치원 다닐 때 CD로 들려주었던 책들이다. 가장 쉬운 것부터 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CD가 이삿짐에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서 CD 플레이어 안에 마침 하나가 있어 (언제 틀어줬는지도 모르겠는;;;) 'Who's There'로 시작하게 되었다. 난이도는 조금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주의 영어교재

우선 CD를 한번 쭉 들려주었다. 책을 노래같이 만든 부분도 있고 컴퓨터로 할 수 있는 workbook도 있어서 활용하기 좋을 것 같았다. 노래 부분에서는 서로 다 같이 일어나 각자의 율동으로 (엄마의 재롱잔치)....  그러고 나선 한번 쭉 같이 읽었다. 중간중간 읽어주며 뜻을 한글로 유도해보았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뜻을 얼추 맞춰서 신기했다. 주인공이 Jackal과 caterpiller인데 나조차도 자칼이란 동물이 생소했다. 그래서 우린 또 찾아보았다. 개과라는 것, 귀가 꽤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배경지식을 알게 되니 왜 자칼이 무서워서 귀를 접어 눈을 가렸는지가 이해되었다. 귀가 꽤 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Leopard가 snake를 무서워하는 부분에선 첫째가 왜 Leopard가 자기보다 작은 snake를 무서워하냐는 질문에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코브라와 같은 뱀들을 보여주는 'The World's Biggiest Snakes' 동영상을 보았다. 이렇게 공부하고 이번 주 내내 자주 같은 CD를 들려주었다. 주말 동안도 계속해서 들려줘야겠다.


이 WFTA책이 10권도 넘게 있어서 아마 이 책들만 써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번의 영어수업에서는 예전에 뉴욕에서 사 왔던 'What do people do all day?'라는 그림책을 함께 보았다. 다양한 직업에 대해 영어로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워낙 그림이 디테일해서 보는 게 재미있었다. 이런 책들도 많아서 굳이 홈스쿨링을 위해 다른 영어교재를 사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파닉스도 유치원에서 쓰던 교재들로 하기로 했다.



점심식사는 되는 대로 먹였다. 어제는 멸치 주먹밥을 먹였고, 그저께는 너구리 라면과 밥을 줬다. 아이들도 라면을 너무 좋아한다. 항상 남편과 내가 먹으면 옆에서 조금씩 먹기는 했는데 식사로 내어준 건 처음이었다. 너구리가 조금 매웠는지 물을 계속 마시면서도 맛있다고 계속 먹었다. 신기하게도 어제 지나가면서 라면 냄새를 맡는데 5살 둘째가 이건 너구리 라면이라는 것을 맞혔다는 것. 후각이 나만큼이나 예민한 아이인가 보다.


그렇게 힘을 빼니 하루가 훨씬 쉬워졌다. 점심이 제일 어려웠는데 '점심이 부실하면 저녁에 신경 쓰자. 점심을 잘 먹였으면 저녁은 대충 있는 걸로 먹이자.'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유제품을 조금씩 줄여보려는 생각에 아이들에겐 우유 대신 두유를 주고 있다. 1주일 째인데 첫째는 잘 마시고 있는데 둘째는 우유를 찾아서 어제 한잔 내어 주었다. 장보는 것도 항상 함께한다 (당연히). 며칠 전엔 동네 시장에도 데려갔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 재래시장은 처음이었다.


옛날에 '주부'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적이 있었다. 집에서 애보고 살림한다는 말이 나에게 가장 치욕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엄마 외의 다른 타이틀을 원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뭐하냐고 물어봐도 ‘지금은 아이를 보느라 집에있지만 곧 회사에 나갈것’을 꼭 명시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보니 나는 생각보다 전업주부가 꽤나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회사보다 훨씬. 재취업되어 회사에서 일하던 시간들과 육아휴직 시간들 모두 나에게 피와 살이 되었고, 나에겐 아이들 외에도 신경을 쓸 '일'이 생겼다. 홈스쿨링을 하면서도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이유는 원서 읽기 라이프 살롱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의 육아, 살림 스위치를 끄고 다른 불을 켤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게 나에겐 큰 동력이 된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늦게 일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겐 축복이다. 홈스쿨링이 나에게 이런 것도 깨닫게 해 주다니!


내가 자주 보는 채널예스에서 이런 글이 있었다. 이환희 '다가오는 말들' 편집자의 인터뷰 글이었는데,

불편함과 혼란이야말로 개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계기


라는 말이 있었다. 이렇게 와 닿을 수가. 내 생각에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그 순간부터 항상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다. 거의 10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한없이 작아지던 그 힘든 시간에서 내가 성장했다. 불편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다. 지금 아이들의 홈스쿨링을 하면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내 일을 해내는 이 시기가 또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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